[한경인터뷰] 김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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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적극적인 자기변신에 나섰다.
세계수준의 원천기술개발을 목표로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실천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고 민간기업의 자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스스로의 살길을 만들어간다.
정부에 매달리기만 해온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KIST의 이같은 노력은 출연연구소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구소는 물론 학계 기업등으로부터 관심이 높다.
변신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사람은 김은영원장이다. 안에서 연구소를
관리하는 대신 밖으로 나서고 있다.
그가 찾아가는 곳은 과학기술처와 재정경제원같은 정부부처가 아니다.
산업체 공기업등 자금이 있는 곳을 찾아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돈을 끌어들인다.
''세일즈형 정부출연연구소장''이란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간다는 평이
있다. 본사 강영현과학기술부장과 정건수기자가 김원장을 만났다.
<편 집 자>
*****************************************************************
-요즘 KIST가 연구소발전을 위한 의욕적인 계획을 내놓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재원의 상당부분을 민간기업에서 조달하겠다는
내용에 관심이 쏠리더군요.
<> 김원장 =대우그룹에서 기부한 25억원외엔 아직 별로 없습니다.
연구시설 확충을위해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과학기술자의 이름을 딴게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대소장인 최형섭박사기념연구동을 만들기로 하고 우리연구원의
이사회사에 먼저 손을 벌렸습니다.
100억원쯤 필요한데 대우그룹이 가장먼저 25억원을 냈고 삼성 LG도
구두로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얼마나 모을 생각인가요.
<> 김원장 =딱부러지게 얼마라고 정해진 것은 없어요. 세계수준의
연구소가 되려면 시설뿐만 아니라 인력 자금등 여러가지 면에서
뒷받침이 필요해 정확한 셈은 안나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이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습니다.
7대 인프라구축사업이라고 이름을 붙인 연구시설확충과 연구발전기금
및 석좌기금등에 약 1,000억원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치과학자를 위한 아파트와 초청정연구동 첨단연구동등에는 정부예산
150억원정도가 확정됐으나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을 민간에서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50억원정도씩 모을 예정인 연구발전기금과 석좌기금은 KIST동문회와
연구지원을 해준 기업등에서 모을 계획입니다.
-정부에서도 적지않은 연구비와 운영비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외부서
돈을 끌어다가 어디에다 쓸 생각입니까.
<> 김원장 =변신을 위해서죠.지금까지 산업화에 관련된 연구를
주로 해왔는데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세계수준의 원천기술을 개발해내고 세계의 저명과학자들이 와서
일하고 싶어하는 세계일류연구소가 되려면 연구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독창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해 그 성과를 산업계에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KIST2000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대형화와 집중화가 필요합니다.
연구비도 1년에 수십억원짜리로 덩치가 커져야하고 이경우에는 프로젝트를
따는데 개별 연구원이 아니라 원장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해마다 1억원짜리 연구를 계속해서 얻는 성과와 4~5년간 100억원을 들여
얻는 결과는 비교할수 없습니다.
올해는 우선 한전이나 한국통신 같은 정부투자기관에서 주로 연구비를
구해올 생각입니다.
또 30대그룹 총수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를 갖고 서로 도울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사이에 서울대공대가 "부자"가 됐습니다.
국내기업이 성장하면서 기부와 연구개발투자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생겼고 서울대공대가 앞장서서 이 돈을 끌어들여 대규모 시설투자를
했었지요.
기업들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능력은
아무래도 기술개발측면에서 볼때 연구소쪽이 유리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돈을 끌어오려면 적당한 아이디어가 필요할텐데 어떤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 김원장 =물론 그냥 돈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네 회사가
연구비를 내면 이런이런 기술을 개발해줄수 있고 이것을 통해 얼마의
이익을 기대할수 있다고 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프로젝트개발(PD)
이라고 하는 것인데 연구개발계획을 파는 셈이지요.
-기업총수들을 만날때 과학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요.
이들의 과학기술 마인드와 연구소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 김원장 =최근에 김우중회장을 만났는데 무척 호감을 갖고있었습니다.
김회장은 지난76년 연찬회에서 "같이 출발한 대우에 비해 KIST의 성장이
늦다"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무척 칭찬해줬습니다.
"KIST원장이 만나자고 하면 어느 그룹총수가 마다하겠느냐,지금 여건이
상당히 좋다"면서 고무적인 이야기를 하더군요. 적당한 계기만 마련되면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옛날 이야기좀 하지요. KIST가 내년이면 설립 30년을 맞는데 김원장은
언제 오셨지요.
<> 김원장 =설립 다음해인 67년에 왔습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끝내자 은사인 서울대공대 심정섭교수가 조교수로 채용할테니 빨리
오라고 해서 돌아왔다가 교수임용이 쉽지않아 한6개월 시간강사를
하던중 초대소장인 최형섭박사가 오라고해서 KIST에 합류했습니다.
성기수박사등과 함께 막차로 미국 바텔연구소에 6개월간 연수를 다녀와
유치과학자로 불리게됐습니다.
-설립초창기에는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온 사람도 많았고 상당한
프라이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연구소를 그만두고 대학으로 가는 사례가 많아 연구소의 앞날을
어둡다고 걱정하는 것과는 딴판인데 그때는 어땠습니까.
<> 김원장 =당시 KIST는 봉급많지 시설좋지 남들이 알아주지 더
바랄게 없었습니다.
봉급은 연구원뿐만 아니라 행정직까지도 일반회사에 비해 2.5배쯤돼
대학교수보다 많았어요.
숲속에 들어선 연구소에다 집도 아파트가 흔치않던 그시절에 에어컨이
나오는 아파트를 줬습니다.
물론 나는 독신이어서 아파트는 못받았지만.또 KIST에 있다고 하면
모두 알아줬고 모든 서울시민이 KIST를 다 이해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물론 프라이드만 가지고 으스대기만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의욕도 강했습니다.
연구원들은 대우를 해주고 사기를 북돋워주면 그이상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실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KIST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연구소의 뿌리이면서 연구개발활동의
바로미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KIST의 옛영광을 되살려 두드러진 성과를 낼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앞날도 밝다고 생각하는데요.
<> 김원장 =KIST의 슬럼프가 없었으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수준이
좀더 향상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KIST가 앞서가 세계적인 연구소로 위상을 높이면 다른 전문연구소가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 발전이 촉진됩니다.
-KIST의 옛날 프라이드를 되살리기 위해 "이정도만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재원은 어느정도로 잡고 있습니까.
<> 김원장 =얼마라고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1년예산이 700억원,연구비가 400억원인데 매년 200억원정도만 더있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꺼번에 정부에서 그만큼 늘리기 곤란하므로 산업계자금에도 의존하기로
한 것입니다.
앞으로 연간 수십억원대의 대규모 자금을 기업으로부터 확보해나갈
생각인데 다른 전문연구소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입니다.
-KIST에서 일한지 30년이 다돼가는데 연구원으로 올때는 어떤 꿈을
갖고 있었습니까.
<> 김원장 =나는 정말 여기서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내운명이 참
묘해요.
윤한식박사와 같이 들어왔는데 나는 보직쪽으로 주로 돌아 실장
부장등을 맡다보니 연구이외의것에 시간을 쏟게돼 연구면에서는
낙오자가 됐습니다.
-행정과 관리에 매달리느라 연구를 제대로 못했다고 하더라도 오랜
연구소 근무에서 한가지쯤은 자랑할만한 성과가 있을텐데요.
<> 김원장 =전공은 고분자인데 학문적으로 깊이는 없고 의료관련분야에
주로 관련하면서 인공신장투석기와 인공심폐기를 개발했습니다.
인공심폐기는 심장수술할때 사용하는 심장및 허파를 대신하는 장비로
국내기업이 상품화해 유럽에까지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최근 시작한 암정복 프로그램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릅니다.
생체구조연구센터 김성호박사,의과학연구센터 전성균박사,양자가속기
연구센터 주동일 박사,의료영상연구센터 조장희박사등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가를 모아 놓고 정말 깜짝 놀랄 결과를 낼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성호박사는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가는 성과를 낸 한국인과학자로
평가되는 유명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분을 국내에 모셔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뒷얘기를 좀해주시죠.
<> 김원장 =김박사같은 분을 모셔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영구귀국하지 말고 국내에도 미국과 같은 연구팀을 만들어 양쪽을
왔다갔다하면서 지도해달라고 했습니다.
단 같은 방향의 연구를 하되 내용은 달리해 성과의 소유를 명확히
하자고 해서 성사됐습니다.
[대담 =강영현 과학기술부장/정리 =정건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0일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적극적인 자기변신에 나섰다.
세계수준의 원천기술개발을 목표로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실천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고 민간기업의 자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스스로의 살길을 만들어간다.
정부에 매달리기만 해온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KIST의 이같은 노력은 출연연구소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구소는 물론 학계 기업등으로부터 관심이 높다.
변신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사람은 김은영원장이다. 안에서 연구소를
관리하는 대신 밖으로 나서고 있다.
그가 찾아가는 곳은 과학기술처와 재정경제원같은 정부부처가 아니다.
산업체 공기업등 자금이 있는 곳을 찾아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돈을 끌어들인다.
''세일즈형 정부출연연구소장''이란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간다는 평이
있다. 본사 강영현과학기술부장과 정건수기자가 김원장을 만났다.
<편 집 자>
*****************************************************************
-요즘 KIST가 연구소발전을 위한 의욕적인 계획을 내놓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재원의 상당부분을 민간기업에서 조달하겠다는
내용에 관심이 쏠리더군요.
<> 김원장 =대우그룹에서 기부한 25억원외엔 아직 별로 없습니다.
연구시설 확충을위해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과학기술자의 이름을 딴게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초대소장인 최형섭박사기념연구동을 만들기로 하고 우리연구원의
이사회사에 먼저 손을 벌렸습니다.
100억원쯤 필요한데 대우그룹이 가장먼저 25억원을 냈고 삼성 LG도
구두로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얼마나 모을 생각인가요.
<> 김원장 =딱부러지게 얼마라고 정해진 것은 없어요. 세계수준의
연구소가 되려면 시설뿐만 아니라 인력 자금등 여러가지 면에서
뒷받침이 필요해 정확한 셈은 안나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이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습니다.
7대 인프라구축사업이라고 이름을 붙인 연구시설확충과 연구발전기금
및 석좌기금등에 약 1,000억원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치과학자를 위한 아파트와 초청정연구동 첨단연구동등에는 정부예산
150억원정도가 확정됐으나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을 민간에서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50억원정도씩 모을 예정인 연구발전기금과 석좌기금은 KIST동문회와
연구지원을 해준 기업등에서 모을 계획입니다.
-정부에서도 적지않은 연구비와 운영비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외부서
돈을 끌어다가 어디에다 쓸 생각입니까.
<> 김원장 =변신을 위해서죠.지금까지 산업화에 관련된 연구를
주로 해왔는데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세계수준의 원천기술을 개발해내고 세계의 저명과학자들이 와서
일하고 싶어하는 세계일류연구소가 되려면 연구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독창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해 그 성과를 산업계에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KIST2000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대형화와 집중화가 필요합니다.
연구비도 1년에 수십억원짜리로 덩치가 커져야하고 이경우에는 프로젝트를
따는데 개별 연구원이 아니라 원장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해마다 1억원짜리 연구를 계속해서 얻는 성과와 4~5년간 100억원을 들여
얻는 결과는 비교할수 없습니다.
올해는 우선 한전이나 한국통신 같은 정부투자기관에서 주로 연구비를
구해올 생각입니다.
또 30대그룹 총수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를 갖고 서로 도울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사이에 서울대공대가 "부자"가 됐습니다.
국내기업이 성장하면서 기부와 연구개발투자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생겼고 서울대공대가 앞장서서 이 돈을 끌어들여 대규모 시설투자를
했었지요.
기업들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능력은
아무래도 기술개발측면에서 볼때 연구소쪽이 유리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돈을 끌어오려면 적당한 아이디어가 필요할텐데 어떤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 김원장 =물론 그냥 돈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네 회사가
연구비를 내면 이런이런 기술을 개발해줄수 있고 이것을 통해 얼마의
이익을 기대할수 있다고 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프로젝트개발(PD)
이라고 하는 것인데 연구개발계획을 파는 셈이지요.
-기업총수들을 만날때 과학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요.
이들의 과학기술 마인드와 연구소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 김원장 =최근에 김우중회장을 만났는데 무척 호감을 갖고있었습니다.
김회장은 지난76년 연찬회에서 "같이 출발한 대우에 비해 KIST의 성장이
늦다"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무척 칭찬해줬습니다.
"KIST원장이 만나자고 하면 어느 그룹총수가 마다하겠느냐,지금 여건이
상당히 좋다"면서 고무적인 이야기를 하더군요. 적당한 계기만 마련되면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옛날 이야기좀 하지요. KIST가 내년이면 설립 30년을 맞는데 김원장은
언제 오셨지요.
<> 김원장 =설립 다음해인 67년에 왔습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끝내자 은사인 서울대공대 심정섭교수가 조교수로 채용할테니 빨리
오라고 해서 돌아왔다가 교수임용이 쉽지않아 한6개월 시간강사를
하던중 초대소장인 최형섭박사가 오라고해서 KIST에 합류했습니다.
성기수박사등과 함께 막차로 미국 바텔연구소에 6개월간 연수를 다녀와
유치과학자로 불리게됐습니다.
-설립초창기에는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온 사람도 많았고 상당한
프라이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연구소를 그만두고 대학으로 가는 사례가 많아 연구소의 앞날을
어둡다고 걱정하는 것과는 딴판인데 그때는 어땠습니까.
<> 김원장 =당시 KIST는 봉급많지 시설좋지 남들이 알아주지 더
바랄게 없었습니다.
봉급은 연구원뿐만 아니라 행정직까지도 일반회사에 비해 2.5배쯤돼
대학교수보다 많았어요.
숲속에 들어선 연구소에다 집도 아파트가 흔치않던 그시절에 에어컨이
나오는 아파트를 줬습니다.
물론 나는 독신이어서 아파트는 못받았지만.또 KIST에 있다고 하면
모두 알아줬고 모든 서울시민이 KIST를 다 이해하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물론 프라이드만 가지고 으스대기만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의욕도 강했습니다.
연구원들은 대우를 해주고 사기를 북돋워주면 그이상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실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KIST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연구소의 뿌리이면서 연구개발활동의
바로미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KIST의 옛영광을 되살려 두드러진 성과를 낼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앞날도 밝다고 생각하는데요.
<> 김원장 =KIST의 슬럼프가 없었으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수준이
좀더 향상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KIST가 앞서가 세계적인 연구소로 위상을 높이면 다른 전문연구소가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 발전이 촉진됩니다.
-KIST의 옛날 프라이드를 되살리기 위해 "이정도만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재원은 어느정도로 잡고 있습니까.
<> 김원장 =얼마라고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1년예산이 700억원,연구비가 400억원인데 매년 200억원정도만 더있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꺼번에 정부에서 그만큼 늘리기 곤란하므로 산업계자금에도 의존하기로
한 것입니다.
앞으로 연간 수십억원대의 대규모 자금을 기업으로부터 확보해나갈
생각인데 다른 전문연구소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입니다.
-KIST에서 일한지 30년이 다돼가는데 연구원으로 올때는 어떤 꿈을
갖고 있었습니까.
<> 김원장 =나는 정말 여기서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내운명이 참
묘해요.
윤한식박사와 같이 들어왔는데 나는 보직쪽으로 주로 돌아 실장
부장등을 맡다보니 연구이외의것에 시간을 쏟게돼 연구면에서는
낙오자가 됐습니다.
-행정과 관리에 매달리느라 연구를 제대로 못했다고 하더라도 오랜
연구소 근무에서 한가지쯤은 자랑할만한 성과가 있을텐데요.
<> 김원장 =전공은 고분자인데 학문적으로 깊이는 없고 의료관련분야에
주로 관련하면서 인공신장투석기와 인공심폐기를 개발했습니다.
인공심폐기는 심장수술할때 사용하는 심장및 허파를 대신하는 장비로
국내기업이 상품화해 유럽에까지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최근 시작한 암정복 프로그램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릅니다.
생체구조연구센터 김성호박사,의과학연구센터 전성균박사,양자가속기
연구센터 주동일 박사,의료영상연구센터 조장희박사등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가를 모아 놓고 정말 깜짝 놀랄 결과를 낼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성호박사는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가는 성과를 낸 한국인과학자로
평가되는 유명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분을 국내에 모셔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뒷얘기를 좀해주시죠.
<> 김원장 =김박사같은 분을 모셔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영구귀국하지 말고 국내에도 미국과 같은 연구팀을 만들어 양쪽을
왔다갔다하면서 지도해달라고 했습니다.
단 같은 방향의 연구를 하되 내용은 달리해 성과의 소유를 명확히
하자고 해서 성사됐습니다.
[대담 =강영현 과학기술부장/정리 =정건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