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조치는 과연 옳은 것인가.

크레디리요네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부실은행 지원책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총1천3백50억프랑(2백7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부실자산을
정부가 떠맡는다는 내용의 크레디리요네 구제안을 발표, 특혜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사실 은행위기를 겪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특별지원책을 통해 은행들을 파산상태에서
구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정부관계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대형은행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파산은 국가 경제와 금융안정에 큰 위협 요소가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의 경우 지난 89~92년사이 정부가 파산위기에 처한 은행을
지원하는데 쓴 돈이 총 1백6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80년대말 버블금융이 무너지면서 전세계 은행업계는 심한 타격을
입었고 이기간동안 정부가 부실은행을 도와주는데 쓴 구제비용은 몇배로
늘어났다.

금리가 오르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은행들은 갑자기 엄청난 액수의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담보도 부동산시장 급락과 함께 별 쓸모없게 돼 버렸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일본과 스웨덴, 그밖의 많은 정부들은 은행에
새로운 자금을 수혈해주고 악성채무를 변제해 주는등 일제히 은행살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정부가 부실은행을 다루는 방법은 크게 4가지가 있다.

첫째 회사정리 절차를 밟는 것이다.

이방법을 택할 경우 파산은행은 재산관리자의 손에 넘어간다.

예탁금 지급이 보장되고 남은 재산은 매각된다.

전문가들은 부실은행을 처리하는 방법으로는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실은행 5개중 1개가 정리절차에 들어갈 정도로 이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지난 45년이후 정리절차를 밟은 은행이 단 1개도 없다.

둘째 합병을 통한 해결방법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부가 인수은행에 특혜를 부여, 합병을 유도하기도 한다.

셋째로는 정부가 대출이나 양도하는 방법을 들수 있다.

정부가 은행의 악성자산을 떠맡거나 보증해 줌으로써 대차대조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대개는 별도 정부기관신설을 통해 부실은행으로부터 떠맡은 악성자산을
매각하거나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관리하는 형식을 취한다.

크레디리요네의 구제책도 여기에 속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애용되는 부실은행 치료법이기도 하다.

이 경우 은행이 빠른 시일안에 정상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논란이 있다.

정부기관은 부실자산을 다루는 전문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로부터 나온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유화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파격적인 조치에 속한다.

정부는 대개 한 은행의 파산이 도미노현상등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만 이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구제책 남발은 쓸데없는 낭비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구제책은 디플레이션을 뒤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며 결국 사회적
비용만 늘릴 뿐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주주들의 지분을 몰수하고 책임자를 해고하는등 부실은행을 철저히
처벌하지 않고 비호함으로써 은행의 부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도와줄 것으로 믿고 은행들이 위험한 투자를 벌인다
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0년대은행업계에서 이같은 일이 빈번했다.

정부에서는 구제책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같은 현상을
피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관행을 통해 정부의 속성을 파악한 은행들은 정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운영을 지속했다.

정부는 어떤 구제책이 최선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은행의 파산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뉴질랜드 의회에 계류중인 은행법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아니라 예금주들이 은행의 운영상태를 감독하도록 맡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질랜드중앙은행의 돈브라시총재는 "정부가 할일은 은행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안정을 추구함으로써 경제위기를 방지하고 은행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브라시총재의 지적처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설사 파산하는 은행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은행의 운영부실 탓이며 세금을 들여가며 정부가 구해
줘야 할 일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