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노사 새지평을 열자] (19) 불법분규 자제하자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87년 분규 때 회사 정문에 마창노련 회원사 조합원들이 몰여왔다. 우리
    회사 근로자들이 나서서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며 돌려보내 대형분규를
    막을 수 있었다"(한일합섬 이태일부장)

    "분규를 치른 후 조직관리를 정상화하는데 통상 3~5년이 걸린다. 폭행과
    폭언이 남긴 감정의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거평그룹인사.
    노무담당 이용수상무)

    일선 노무담당들의 최종 목표는 노사화합을 통한 사업장의 평화이다.

    그러나 매년 이들이 실제로 신경쓰는 일은 분규예방이다.

    자사노조의 쟁의행위를 합법적인 테두리안에 묶어두고 최악의 경우
    파업이 있더라도 기물파손 폭행 감금등 불법행위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뛰어다닌다.

    불법분규의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노사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을 쓰는 회사들은 분규때 창업주나
    오너가 근로자들에게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노사양측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이다.

    개별회사에 국한될 노사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는 것도 대부분
    불법 분규 탓이다.

    어느 회사의 임.단협이 진통을 겪든 난항을 거듭하든 일반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언론도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불법파업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경찰병력이 몰려들고 매스컴이 앞다퉈 보도한다.

    지난해 6월말 서울지하철공사 분규 때처럼 시민들의 불만이 거리에
    울려퍼지기도 한다.

    노조의 주장에 수긍하면서도 방법을 문제삼는 시민들이 늘면서
    분규는 눈에 띄게 줄고있다.

    노조집행부도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분규를
    일으키려하지 않는다.

    회사 안팎의 공공집회에서 질서와 청결을 강조하는 노조가 늘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합원과 시민에게 배척받는 노조는 이제 설자리가 줄어들고있다.

    노사분규는 87년 3천7백49건이 정점이었다.

    88년 1천8백73건 89년 1천6백16건을 거쳐 90년 3백22건을 기점으로
    세자리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모두 1백21건의 분규가 있었다.

    87년 전체 분규의 94.1%인 3천5백28건에 달했던 불법분규 건수도
    지난해에는 전체의 35.5%인 43건으로 감소했다.

    불법분규 가운데 특히 시위 농성 폭력 기물파손 제품반출저지등
    수단불법사례는 91년 17건에서 92년 이후 매년 1건으로 대폭 줄었다.

    지난해 12월 9일 오후.보라매공원에서 삼성승용차진출 반대집회를
    마친 자동차업종노조원들이 구로공단 전철역까지 항의행진을 벌였다.

    대우 기아 쌍용 아시아자동차 서해공업등에서 모인 1만5천여 근로자들이
    벌인 이날 행진은 80년대말과는 판이한 양상이었다.

    행렬 뒷편에서는 각사 노조 집행부들이 빵봉지 우유팩 유인물등을 계속
    수거하며 따라다녔다.

    길가의 삼성생명영업소빌딩을 발견한 일부 근로자들이 우유팩을 던졌지만
    대다수 근로자들은 "질서"를 외쳤다.

    시민들도 오랫만에 보는 광경에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경찰도 "집회 허가 시간을 넘겼다"는 경고방송만 했을뿐 해산시도는
    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9일 대우조선(대우중공업에 합병)노조집행부의 파업시도는
    전체조합원 8천3백여명 가운데 4백50여명만이 참여해 무산됐다.

    결국 당시 집행부는 9월12일 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불법분규와 과격행위를 자제하는 근로자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증거인 셈이다.

    실제로 개별사업장의 노조집행부들은 과거의 전면파업 위주의 쟁의전략을
    버리고 부분파업 리본패용 사복착용 등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냉각기간이 경과하더라도 파업돌입을 자제하고 부분파업이나 정상조업
    하에 교섭을 진행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무노무임"원칙이 정착되면서 파업에 따른 조합원손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자들은 법적인 열위에서 내세울 것은 조직의 힘뿐이란
    반응을 보인다.

    최근 네팔 근로자들의 명동성당 시위에서 밝혀졌듯 비인간적인 대우를
    서슴지 않는 악덕사업주들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법분규는 노사양측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회사내에서 서로 불신의 골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회사와
    근로자들의 이미지가 손상된다.

    조업차질로 인해 불량률이 높아져 제품판매도 급감한다.

    파업이 끝난후 파업참가자와 정상조업촉구근로자들간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분규 여파로 현재 5천여명의 근로자가
    노조를 탈퇴하는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해 7월1일.

    김수환추기경 강원룡목사 조요한전숭실대총장 김성수대한성공회대주교
    송월주스님 이세중대한변호사협회회장등은 "사업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내놓고 파업사태와 관련,이렇게 밝혔다.

    "국민들의 고통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으려할 때 그 주장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대기업노동자들도 법이 보장한 파업권의 행사에는 인내심을 갖고 파국적
    상황이 도래하지 않도록 대화와 타협에 의해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우리
    사회의 산업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로자들의 쟁의목적이 임금수준향상 근로조건개선 사회적지위향상에
    있는 만큼 그 행위도 합목적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결승선에서 깨달은 투자법

      2023년 말, 직장 동료가 들려준 달리기의 즐거움에 매료돼 러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숨이 가쁘고 쉽게 지쳤지만, 새벽과 주말을 활용해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꾸준히 달리다 보니 작년에는 하프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의 성취감은 컸다.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의 결과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첫 도전이었기에 목표는 그저 완주였다. 동료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준 덕분에 여유 있게 몸을 풀고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초반 워밍업이 끝나자 자신감도 붙었다. 새로 산 경량 러닝화 덕분인지, 대회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몸도 가볍게 느껴졌다. 문득 어쩌면 2시간 안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계획보다 조금은 빨리 달려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페이스를 올려가던 중 17㎞ 지점을 지난 오르막길에서 급격히 체력이 소진됐다. 황급히 에너지 젤을 먹고 이온 음료도 마셔봤지만 한번 떨어진 페이스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곧 가벼운 조깅 속도마저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어찌어찌 버티면서 결승선까지는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제야 수많은 달리기 선배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초반 스퍼트의 위험성과 꾸준한 페이스 유지의 중요성을.최근 많은 투자자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를 느끼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다급해지고, 급등장을 보고 있노라면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이럴 때일수록 &lsq

    2. 2

      통영의 봄날, 시와 음악과 도다리쑥국…[고두현의 문화살롱]

      얼마나 애틋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을까. 북방 시인 백석은 남쪽 끝 통영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친구 결혼식에서 한눈에 반한 통영 출신 이화여고생 ‘난(蘭, 본명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짝사랑하는 여인은 거기 없었다. 갈 때마다 길이 엇갈렸다. 낙심한 그는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울 듯 울 듯 손방아만 찧었다.당시 그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구마산역에 내린 다음 객줏집에서 자고 뱃길로 반나절 더 가서 통영에 도착했다. 그 먼 길에 어렵사리 꺼낸 청혼은 거절당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더 강렬하고 기억도 오래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이가르니크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 때문일까. 백석에게 통영은 못다 한 사랑과 미완의 결핍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항구다. 어쩌면 그 덕에 통영의 역사가 더 풍요롭고, 서정과 서사의 폭도 넓어졌는지 모른다. 청마문학관엔 빨간 우체통이90년 전 그의 회한을 되짚으며 봄맞이 통영 기행에 나섰다. 옛 이틀 길을 고속버스로 네 시간 만에 닿았다. ‘난’이 살던 집 주소는 명정동 396.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그녀의 옛집 건너편엔 오래된 우물 두 개 ‘명정(明井)’이 나란히 있다. 다정한 부부 같다. 맞은편 공원의 시비에는 백석의 시 ‘통영 2’가 새겨져 있다. ‘미역 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구절이 유난히 애처롭다.명정동에서 서피랑 골목을 끼고 강구안으로 가는 항남동 길에도 백석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이곳은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

    3. 3

      [강경주의 테크 인사이드] 중국이 전인대에서 BCI 언급한 이유

      “딸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입니다.”‘Isn’t she lovely’라는 명곡을 작사·작곡한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이다. 임신 35주 만에 태어난 조산아였던 그는 신생아 집중치료를 받던 중 간호사의 실수로 인큐베이터에 산소가 과다 유입되는 사고가 발생해 시력을 잃고 만다. 병명은 미숙아 망막병증. 눈이 덜 자란 상태에서 과도한 산소 치료를 받다가 망막이 손상된 경우다. BCI, 산업 패권 좌우한다스티비 원더는 시력을 잃었지만 탁월한 음악성을 발휘하면서 어릴 때부터 음악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배출한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음악 음반사 모타운 레코즈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영입했을 때 스티비 원더의 나이는 불과 11세. 앞을 볼 수 없던 천재 소년은 모타운 소속으로 음악 활동을 하다가 작곡가인 시리타 라이트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20세가 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딸 아이샤 모리스를 품에 안았지만 스티비 원더는 딸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마음을 담아 곡을 썼고 딸의 얼굴을 수없이 머릿속에 그렸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Isn’t she lovely’는 이렇게 탄생했다.과거엔 스티비 원더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각만으로 컴퓨터, 로봇을 다루고 시각장애인이 앞을 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시대가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BCI는 뇌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외부 장치를 제어하는 ‘꿈의 기술’로 불린다.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BCI 기업 뉴럴링크는 ‘블라인드사이트’ &lsquo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