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은 금실 좋은 부부처럼''
한 세대도 넘기기 어렵다는 동업 관계를 2세, 3세로까지 단 한차례
잡음없이 이어가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최근 3세 동반 경영 체제를
구축한 LG그룹을 비롯해 삼천리그룹, 한국유리, 한국화장품이 바로
이런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의 동업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각론부터 말하면 회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지분을 완전 동등하게 나누어갖고 경영권도 "딱 반으로 잘라" 대등
하게 행사하는 신세대부부형 동업이 있는가 하면 지분에 일정한 차이를
둬 많이 가진 쪽에서 "대권"을 행사하되 덜 가진 쪽에서 철저한 몸
낮추기 내조로 동업을 잇는 부창부수형 동업도 있다.

그러나 "총론"은 단 하나.
"금슬"이다.

지분이 같건 차이나건 그에 관계없이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상호신뢰와 협조가 그것이다.

이게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은 초창기 동업으로 출발했던 대부분
국내 대기업그룹들이 1세대도 넘기기전에 "이혼"(결별)으로 끝난데서
잘 알 수 있다.

** LG그룹은 지난달 22일 구본무회장 취임과 함께 그룹서열 2위직인
LG전선회장에 허창수씨를 추대,"구 허양가의 동반 3세 경영체제"를
열었다.

LG그룹은 국내 최고 기업집단으로 3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차례도
경영권과 관련된 마찰음 없이 동업경영체제를 이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구씨 가문에 이어 그룹2대주주인 허씨 가계의 철저한
"내조 몸낮추기"에 있다는게 정설이다.

물론 구씨 가계의 허씨 가문에 대한 "예우"와 "배려"도 각별하다.

단적으로 그룹회장은 구씨 가문의 적장자,2위직인 LG전선회장은
허씨 가문의 적장자가 맡는다는 게 불문율로 지켜져오고 있다.

대신 그룹최고 경영의사 결정기구인 "정책위원회"는 항상 구 허씨
양가의 경영권을 동수로 안배하고 있다.

그룹회장실 고위관계자는 "구씨 가계에서 그룹경영과 관련해 결정
해야할 중요사안이 있으면 항상 허씨측에 사전동의를 구한다"며 "
그때마다 허씨 측은"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는데."라며 위임해 버리는
관계"라고 양가의 모범경영동업 비결을 설명.

** 삼천리그룹의 동반 창업주인 유성연삼탄명예회장(78)과 이장균
삼천리명예회장(74)은 지난93년에 각각 아들인 유상덕회장(36)과
이만득회장(39)에게 경영권을 승계,국내 처음으로 2세동업체제를
이뤘다.

이들의 동업비결은 철저한 "신의"와 "균등분할 원칙".실제로 두
명예회장은 친형제 이상의 친분을 쌓고 있다.

사는 곳도 모두 서울 방배동으로 위아래집(1백m거리)이다.

집안네들끼리는 "큰집""작은집"으로 부른다.

부인들끼리도 "형님""아우"하며 지내는 사이다.

게다가 이들은 사업을 물려줄 아들들까지 형제처럼 키웠다.

두 아들을 똑같이 고려대 경영학과에 보내 동문 선후배를 만들고
경영수업도 비슷한 코스를밟게 했다.

지분문제에 있어서도 한치의 우열이 없게끔 "관리"하고 있다.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똑같은 비율로 나눠갖고 있는 것.계열사 지분은
물론 신규투자를 할때도 단 1%의 차이없이 똑같이 출자한다.

그룹경영에서도 "균등원칙"이 적용돼 사장단회의를 서로 번갈아
주재한다.

그래서 2주에 한번 꼴로 열리는 그룹사장단회의는 삼탄(대치동)과
삼천리(여의도)사옥에서 한번씩 돌아가며 열린다.

재미있는 건 유 이명예회장은 개인적인 성격이나 취향에선 정 반대라는
것.유회장은 성격이 신중하며 취미도 바둑으로 정적이다.

반면 이회장은 활동적이어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며 골프를 특히
즐긴다.

그래서 유명예회장의 별명은 "영국신사",이명예회장은 "독일병정"으로
불린다.

** 한국화장품은 지난 62년 김남용명예회장(76)과 임광정명예회장(74)이
6대4의 비율로 투자해 회사를 설립한 이후 30년이상 돈독한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2월에는 임명예회장의 장남 충헌씨(54)가 대표이사 회장으로,김명예
회장의 조카 두환씨(55)는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앉아 2세동업체제를
구축했다.

이 회사의 동업비결은 두집안의 역할분담과 사돈관계를 맺은데서
찾을 수 있다.

임명예회장은 경영에 참여한 반면 김명예회장은 지분만 갖고 경영
전면에는 나서지 않았다.

두 창업주는 또 사돈관계이다.

임충헌현회장은 김명예회장의둘째딸인 김옥자씨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임회장과 김부사장은 두 창업주에 대한 예우가 특히 각별하다.

해외출장중이라도 임 김 두 명예회장부부의 생신때는 일정을 앞당겨
귀국, 찾아뵙는다는 게 비서실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최.이.김 3가"의 트로이카 동업체제로 유명한 한국유리는 창업주들과
2세 경영인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자주 만나 현안을 해결하는 게 특징.
또 독실한 기독교 집안들이라는 점도 공통요소다.

지난57년 현 명예회장인 최태섭씨(86)와 회장인 이봉수씨(79),지난79년
작고한 김치복씨등 3인의 동업형태로 출발한 한국유리는 지난93년
"2세 트로이카 동업시대"에 들어갔다.

최명예회장의 장남인 영증씨(58)가 82년에 사장으로 가장 먼저
출발한데 이어 이회장의 둘째아들 세훈씨(47)와 고김부회장의 둘째아들
성만씨(49)가 93년에 부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최사장은 최근 주총에서 부회장으로,이부사장은 사장으로 한단계씩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들 트로이카중 이사장과 김부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 봐야하며,
회사 경영구도도 자본보다는 경영측면에서의 2세동업체제라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최명예회장과 이회장은 요즘도 1주일에 한 두번씩 회사에서 만나
중요사안을 협의한다.

누가 먼저 만나자고 요청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만나는 게 "불문율"로 돼있다.

2세들도 마찬가지다.

사장과 부사장이라는 직급을 떠나 이들은 공식적인 중역회의 말고도
수시로 만나 기탄없는 대화를 통해 현안들을 처리하고 있다.

또 외국의 중요한 손님이 오면 다 함께 모여 골프를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