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직원으로 수십억달러 규모 기업을 만들겠다"

미캘리포니아주 노키아 디스플레이 프로덕트사 마하르 모트라기 사장(34)의
지난 92년 취임일성이었다.

번듯한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갓 태어난 기업의 초대사장치고는 희한한
다짐이었다.

2년후인 지난해 모트라기사장은 직원 4명으로 노키아 디스플레이
프로덕트사를 연매출 1억달러규모 기업으로 키워냈다.

게다가 올해는 전년도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3억달러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처음 계획보다는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있지만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혼자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꼭 필요한 인원만 둔다"는 그의 철칙은 수년전 그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불합리의 시대(The Age of Unreason :찰스핸디저)"라는 책때문이었다.

요점은 주력업무를 제외한 모든 일을 전문기업에 맡기라는 것.

관료적인 성격을 최대한 억제해야 기동력있는 기업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모트라기사장은 고객 서비스및 지원,물류,홍보를 비롯한 모든 주변업무를
하청업체에 의뢰했다.

노키아 디스플레이 프로덕트사는 오직 모니터를 파는 일에만 주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 두번째 모험이었다. 성공과 모험의 관계는 동전 앞뒷면과
같다"고 모트라기 사장은 말한다.

모트라기 사장의 첫번째 모험은 지난 80년대 중반 IBM 유럽현지법인에서
직장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IBM 컴퓨터 모니터를 생산할 유럽 업체를 찾는 것이 주어진 일이었다.

그는 핀란드 노키아사의 모니터를 주목했다.

노키아사는 지금 세계 2위의 무선전화업체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트럭 타이어부터 컴퓨터까지 만드는 무명기업에 불과했다.

이란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타고난 "감각"으로 그는
밀어 붙였다.

무모하지 않느냐는 주위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적중, 노키아 모니터는 IBM등 미국업체의 큰 호응을 얻었다.

몇년후 그는 노키아사로부터 미현지법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자기 기업을 가꿔보고 싶다는 평소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IBM을 박차고 나와 노키아 디스플레이 프로덕트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회사를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워놓은 지금 모트라기사장은 새로운
모험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여태까지는 노키아 모니터를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팔았으나 이제
오리지널 브랜드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

노키아 본사 경영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노키아"라는 브랜드가 먹혀들어가겠냐는 것이었다.

간신히 본사를 설득한 그에게 주어진 지원자금은 10만달러.

신문광고 세번 내고 팜플렛 하나 내면 그만인 액수였다.

그러나 모트라기사장은 자사 제품의 품질에 확신을 가졌다.

특히 17인치 모니터는 어느 회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신념은 옳았다.

자사제품은 컴퓨터잡지에 추천 상품으로 뽑히는 등 베스트 셀러 계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노키아본사는 미국에 생산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검토중이기까지 하지만 정작 모트라기 사장은 시큰둥하다.

"아무리 회사가 성장해도 직원수를 늘리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날렵한 기업을 만든다는 내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 염정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