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외국브랜드의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초콜릿 비스킷에서 광고시장까지 외국브랜드에 자리를 내준채 러시아국산
제품은 가게 선반위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러시아의 산업생산이 지난 4년간 절반수준으로 줄었지만 이 기간동안 실질
가계수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새로 도입된 사유제로 인해 러시아인들의 주머니사정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풍부해진 현금은 이제 외국산 소비재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인들이 비스킷등 과자류를 사는데 쓴 돈은 총50억달러.

이탈리아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같은 소비능력 향상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유별난 외국브랜드 선호도가
러시아를 외제천국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러시아인들은 웃돈을 얹어가면서 외제를 사들이는데 열성이다.

프록터&갬블(P&G)의 세제는 이미 모스크바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 소비자들은 저렴한 국산세제(kg당 9,000루블)를 제쳐놓고 1만
5,000루블(3.18달러)짜리 P&G제품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초콜릿시장 역시 2개의 외국브랜드가 양분하고 있다.

미마스터푸드가 35%, 영캐드버리가 17%씩 장악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인 100명당 5명만이 러시아산 초콜릿을 사고 있다.

소비재뿐 아니라 TV광고시장도 외국회사들로 북적대고 있다.

지난해초 1분당 1만5,000달러에 불과하던 TV 황금시간대 광고가격은 1년새
3배나 뛰어올라 4만5,000달러에 이르렀다.

이같은 광고비급등에도 불구하고 전체인구의 1%를 광고앞으로 끌어
앉히는데 드는 비용은 530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프랑스의 2,600달러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

러시아내에 매체가 다양화되고 있는 점도 외국회사들에는 유리하게 작용
하고 있다.

러시아어판 코스모폴리탄은 지난 여름 러시아에 시판을 개시했는데 43만부
나 발행, 미국에 이어 제2위의 판매시장으로 부상했다.

현재 러시아브랜드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는 분야가 육류제품.

러시아인들은 수입산보다 국산 소시지가 건강에 좋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결과 나타났다.

앞으로 5년후 소시지가 러시아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국산제품
일지도 모른다고 많은 러시아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