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45년을 맞은 한국은행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한은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 민병수.

5.16이후 군사정권시절 중앙은행에 가해진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사표로써
거절한 인물.

이때문에 30여년이 지난 오늘도 후배 금융인들로부터 존경받는 ''한은맨''
민병수(79).

민 전총재는 39년 일본 경응대를 졸업한뒤 조선은행에 입행, 금융과
인연을 맺었다.

그뒤 시중은행(조흥은행상무 상업은행전무 제일은행장)과 한은수석부총재
등 주요보직을 두루 거쳐 금융인의 꽃인 중앙은행총재에까지 올랐다.

63년 한은총재를 그만둔뒤 관광사업을 시작, 한양관광 경춘관광등을 설립
했으며 현재는 그랜드 하얏트호텔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금도 자기소개를 할때 여러가지 명함중 ''한국은행 고문''명함을 가장
자랑스럽게 내미는 영원한 ''한은맨'' 민 전 총재를 만나보았다.

-첫직장으로 금융기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 민전총재 =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금융계에서 일하시던 선친께서
은행을 권유하셨지요. 그래서 조선은행에 들어갔어요.

은행에 들어가서는 일도 재미있고 해서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운이
따랐는지 승진도 빨리 되었어요. 승진이 남보다 좀 빨랐지만 소위
승진운동이란 것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은총재를 누가 시켜줬는지
지금까지도 잘 모릅니다.

-한은총재를 스스로 그만둔 "사건"이 한은맨들의 기억속엔 아직도
생생한것 같은데요. 한은총재를 왜 물러나셨습니까.

<> 민전총재 =당시 은행감독원을 한은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재무부가
마련한 한은법개정안에 반대,이를 무산시킨일이 간접적으로 작용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불.이어업차관"문제때문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백달러도 안됐고 외화보유고도
1억달러선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무려 1억6천만달러 규모의 어업차관을
들여온다는 거예요.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곤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동의할수 없다고 반대했지요. 그랬더니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5.16직후 군사정권시절에 정부방침을 정면으로 반대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 민전총재 =처음엔 당시 김유택부총리에게 건의했어요. 그정도의
차관을 들여온다면 우리경제는 파탄을 맞을것이기 때문에 찬성할수
없다고요.

그랬더니 김부총리가 이미 정부간에 계약을 맺은 것이어서 어쩔수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찌됐건 차관서류에 도장을 찍을수 없다고
버텼지요.

사표를 내면 냈지 도장은 찍을 수 없다고 말하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고 난뒤 며칠후에 김현철 내각수반이 나더러 직접 국무회의에
나와서 "해명"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물론 국무회의에 가서도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이건 혁명정신에도 위반된다. 굳이 하라고 하면 내가 한은총재를
그만두겠다"고요. 결국 그 며칠뒤에 사표가 수리됐습니다.

-한은총재가 어떻게 국무회의에 참석할수 있었습니까.

<> 민전총재 =당시 법에는 분명히 한은총재가 국무회의에 참석토록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해명"을 하러 국무회의에 가보니까 글쎄 한은총재 자리는
있지도 않아요.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건설부장관이 그날 참석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자리로 가서 건설부장관 명패를 내려놓고 앉았습니다.

어쨌든 그날이 한은총재가 국무회의에 참석한 첫번째일 겁니다.

-외압이 있었을 법도 한데요.

<> 민전총재 =왜 없었겠습니까. 여러가지 보이지 않는 압력이
가해졌지요. 심지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사들까지 찾아와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정부끼리의 얘기는 정부에 가서 항의하라고 했지요. 그만둘
작정으로 일을 했는데 외압이 무슨 상관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증권파동이 일어났을 때는 금융지원서류에 직접 도장을
찍지 않으셨습니까.

<> 민전총재 =총재가 된 직후 증권파동이 일어났어요. 물론 한은의
모든 직원들은 증권회사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금융지원을 결정해놓고 통고하는 거예요.

내 명예만을 생각하면 반대를 해야마땅했지만 정부가 다 결정해놓은
사실이 알려진 마당에 반대하면 증시에 충격이 너무 클것 같았어요.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결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두번째로 증권금융을 주려고 했을때는 확실하게
반대를 해 자금지원을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때 기자들을 불러놓고 미리 "발설"한 것은 지금도 언론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습니다.

<> 민전총재 =당시 한은총재실을 기자들에게 완전 개방했어요. 언제라도
총재실에 들어올수 있었지요.

정부에서 증시에 자금을 지원해도 증시가 돌아설 생각을 않자 제2차
자금지원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래서 이를 기자들에게 미리 가르쳐줘 언론에 사전 보도됨으로써
정부가 금융지원을 할수 없도록 했습니다.

당시 재무부에서 은감원을 분리하려는 한은법개정안을 만들려고
할때도 같은 방법으로 대처했지요.

-요즘 재정경제원에서 내놓은 한은법개정안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요.

<> 민전총재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특히 민주정치를 표방하는 문민정부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재경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우리 경제는 몇십년 뒤로 후퇴하게 됩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개정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재경원안중에서 일부라도 찬성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 민전총재 =없습니다.

-은행감독원을 한은에서 분리하는데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 민전총재 =내가 총재로 있을때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어요.

정부에서 감독원을 떼가는 것은 오랜 숙원입니다. 정부에선 금융감독의
통일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현정부에선 더더욱
이해가 가지않는 일이지요.

그런 얘기가 아직도 나오는데 대해 전총재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총재 재직시 한은의 중립성을 완전히 보장해놓아야 했었는데..역대
총재들이 모두 같은 생각일 겁니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게 가장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수 있지 않을까요.

<> 민전총재 =중앙은행과 정부는 굵은 파이프로 연계되면 곤란합니다.
견제와 협조체제로 가야지요. 그렇게 하려면 명주실로 연결해 놓은것과
같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결합된 조직은 아니지만 작은 움직임도 전달되면서 영향을
미치는 관계여야 하지요.

물론 정부에서도 중앙은행총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한은독립이 별다른게 아니라 바로 이렇게 중앙은행의 기능을 정상화
하자는 것입니다.

-과거 한은 재직당시 한은맨들은 어땠습니까.

<> 민전총재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와 공부하고 훈련을 했습니다.
이들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한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중은행에서는 한은맨들이 예나 지금이나 프라이드가 너무 강하다는
소리들을 하지만 그래도 한은맨들은 프라이드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민전총재 =요즘 과소비가 너무 지나친것 같아요. 경제를 활성화
하면서 물가를 잡아야 하는데 그게 우려됩니다. 바로 이점에서
중앙은행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물가안정는 중앙은행 고유의 사명이고 또 중앙은행만이 할수 있지요.

재경원등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팽창주의로 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견제할수 있는게 중앙은행뿐이지요.

정부도 중앙은행을 잘 활용해야 물가안정을 이루며 경제를 꾸려나가기
쉽습니다.

-건강이 좋으신데요. 요즘도 휘문고등학교에 가셔서 야구부원들과
야구를 하십니까.

<> 민전총재 =1주일에 세번은 갑니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뛰다보면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옛날엔 승마도 했지만 요즘은 가끔 골프를 치는 정도지요. 욕심부리지
않고 세상사는게 건강의 비결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과 자주 만나시는지요.

<> 민전총재 =내 전임이었던 유창순 전총재와는 1주일에 한두번 정도
만납니다. 김상영 산정연구회이사장 하영기 전총재와도 자주 만나는
편이고요.

한은총재고문실에도 가끔씩 들러 세상 돌아가는 얘기 나누길 좋아합니다.

-금융계의 원로로서 후배들에게 하시고싶은 말씀이 있으면 이기회에..

<> 민전총재 =한은의 젊은 친구들이 한은법 개정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은을 사랑한다는 얘기지요.

후배들의 한은에 대한 애정을 감명깊게 생각합니다.

우리같은 올드보이도 뭔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요.

사회의 다른 부문에 비해 금융기관들이 뒤져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하면 장래는 밝다고 봅니다.

<대담=이진원정경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