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대상은 모든 인간이다.

흔히 복지의 대상계층을 한정하는 좁은 개념은 "인간복지"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나의 복지 체험은 유별난 것일까? 한국에서 큰애를 낳을 때 병원에서의
그 "애낳는 기계" 취급에 비해 미국에서 작은애를 낳을때 "인류창조의
어머니" 대우는 선명하다.

지금도 병원에 가는 것은 언제나 싫고 영안실에 가는 때에는 그
격 없음에 참 품있게 죽기도 어렵구나 싶다.

대로를 건너가다가 발빠른 나조차 반쯤 건너가면 깜박이는 파란
불을 보면 나자신 개미로 느껴진다.

그래도 다리를 쓰니 다행이다 싶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 시원히 폐달을 밟을수 없다 싶으면 그만 도시를
떠나고 싶다.

공부 잘함가 관계없이 삼수 하기를 선택하는 조카를 보고 그만
억하심정이 되어버린다.

"도시속의 슬럼"같은 애들의 학교환경에 꿈나무에 대한 기대는 가시게
된다.

컨설팅 하다 그저 많이 높이 짓고만 싶어하는 고객이 대부분임에
업을 관둘까 싶기도 하다.

왜 부동산 관계 일은 불필요한 행정 풀고 비효율적 업무 끄는 배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가 한탄하기도 한다.

이럴때 마다 "참 아직 멀었다"싶고 "여기는 한국이야"하고 생각하다
스스로를 꾸짖기도 한다.

한국이면 복지사회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특정계층을 위한 사회복지(
social welfare )이상으로 시민을 위한 공공복지( public welfare
),그보다 한수 더 높게 인간임으로 누리는 인간복지( human welfare
)를 실천하는 사회,우리도 이런 사회에 살수 있으리라. 인간임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자연스럽게 누리고 살수 있는
사회,그래서 소외층에 대한 미안함이나 특혜층에 대한 못마땅함
없이 자신의 그릇에 맞춰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그저 즐거운
사회,그런 사회야말로 매일매일의 인간복지가 구현된 사회이리라.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