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친구얘기 좀 들려주실까요. 세계화시대이니 우선 가깝게 교유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인은 어떤 분들입니까.

<>구명예회장=GE(제너럴 일렉트릭) 칼텍스 모토롤라 히타치등의 회장들과
얘기를 자주 나눕니다.

경영이념등 서로 통하는게 많거든요. 그중에서도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GE의 잭 웰치회장입니다.

그 사람도 혁신에 미쳐 있거든요. 나는 혁신을 "종착역 없는 여정"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네버 엔딩(끝없는 길)"이라고 할 정도예요.

그래서 지난 93년 세계 기업사상 초유의 "정신적 합작"을 선언하기도
했지요.

-국내에선 어떤 분들과...

<>구명예회장=재계친구들은 두루 만나고 있지요. 다만 요즘은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박용곤두산그룹 회장과 필드에서 자주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들 두 분은 우리와 함께 보람은행의 3대주주로 있거든요. 이 분들을 내가
곤지암CC(LG)로 초청하면 답례로 춘천CC(두산)나 우정힐즈(코오롱)에 불러
주니까요.

-시간나면 책도 벗삼아 읽으신다면서요.

<>구명예회장=요즘은 별로 못 읽어요.

-회장께선 언젠가 이토 요카도사 이토회장이 쓴 "상인의 마음가짐"을
읽고 그의 경영관을 극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구명예회장=그 책은 모든 문제를 다 장사꾼식으로 풀이하고 있거든요.
한마디로 요약해서 소개한다면 "안성맞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옛날 경기도 안성에 가서 유기를 주문하면 상인들이 미리 이것 저것
손님의 요망사항을 다 헤아려 입맛에 꼭 맞는 그릇을 만들어 주었다는
데서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겼다지 않았습니까.

이토회장의 "상인의 마음가짐"은 이런 안성맞춤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웰치회장이건 이토회장이건 회장께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분은 역시
선친인 련암(고구인회LG그룹 창업회장의 아호)선생 아닙니까.

선생께선 어떤 가르침을 주셨습니까.

<>구명예회장=근검 절약해라, 돈을 쓸 때는 크게 써라, 사업을 하려면
크게 하라는 말씀이었지요.

-신임회장에겐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까.

<>구명예회장=자식들에게도 선친의 말씀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LG그룹을 보면 명예회장과 형제되는 분은 물론 아들 조카등 많은 분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허씨 가계에서도 여러 분들이 중책을 맡고 있고요. 그러면서도 쇳소리는
커녕 잡음 한번 없었지요.

인화는 병법에서도 천시나 지리보다 상위개념으로 꼽고 있지만 어디
그게 그리 쉬운 일입니까.

인화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구명예회장=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면 어떤 불평도 생기지 않는
법이지요.

비결이 있다면 바로 공정입니다.

-LG그룹의 회장.사장은 정년불문율을 두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요.

또 그같은 임기는 신임회장에게도 적용됩니까.

<>구명예회장=능력있는 사람에겐 정년을 둘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후계자
가 자기보다 더 능력이 출중하면 정년전에라도 물러나 줘야 하고, 현직에
있는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서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면 더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회장께선 사주에 83세까진 문제없다고 나와 있다면서요.

<>구명예회장=그래요. 그렇게 말씀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지난 45년
해방직전 제가 일제로부터 징집영장을 받은 적이 있어요.

입영날짜는 8월하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입대일이 다가오면서
친구들과 이별주를 마시며 환송파티를 몇번 열기도 했지요.

그때 그 분이 "자넨 절대로 군대를 안가게 돼있으니 아무 걱정말라"고
하더군요.

징집영장까지 나와 있는데 무슨 말인가 했는데 8월15일 해방이 되더군요.
정말 군대를 안가게 됐지요.

그분 말씀이 나는 83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술을 과음
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약주는 많이 하십니까.

<>구명예회장=패스포트를 절반 조금 못되게, 한 4분의 1쯤 마시는
정도지요.

-건강하시다보니 담배는 꽤 피우신다고...

<>구명예회장="하나로"를 하루에 한갑반쯤 피웁니다.(구명예회장은 중국
음식점에서 코스로 식사를 할 때 접시가 나오는 사이에 담배를 꺼내물
정도의 애연가로 소문나 있다.)

-약주도 그렇고, 담배도 요즘 더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패스포트나 하나로만을 택하시는 이유라도...

<>구명예회장=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제 입에 밴 것들이어서지요.

-술자리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신다고요. 애창곡은 무엇입니까.

<>구명예회장=예전엔 "가는 세월"을 많이 불렀는데 요즘 김수희의 "애모"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주위에서 "요즘 노래좀 부르라"고들 해서지요.

-진지는 요즘도 많이 잡수십니까.

<>구명예회장=어디요, 아무래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깎아서 딱 한 공기를
먹는 정돕니다.

옛날의 3분의 1정도 밖에 안되지요. 반찬을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한식이 제일 좋지요.

서양식은 별로 안좋아 합니다.

-주무시기 전에 TV는 좀 보십니까.

<>구명예회장=밤 10시나 10시반쯤 잠자리에 들기전에 주로 뉴스를 봅니다.
뉴스외엔 우리 그룹의 광고를 보는 편입니다.

드라마도 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만 한번 빠져들면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길것 같아서요.

-그럼 좋아하는 연예인은 없으신가요.

<>구회장=좋아한다기 보다 탤런트 김희애를 압니다. 우리 그룹 광고모델로
자주 나오는걸 TV에서 보고 있거든요.

-회장께선 베스트셀러의 저자 아니십니까. 지난 92년에 펴내신 "오직 이
길밖에 없다"가 33만부나 팔렸다면서요.

회고록 같은 다른 책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후배경영인들에게도
필요할텐데요.

<>구명예회장=남이 다 쓰는 책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경영혁신
과정에서 겪고 느낀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정리해 책으로 내볼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요즘 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2세경영인들의
대선배로서 후배경영인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말씀을 들려주시지요.

<>구명예회장=글쎄요.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누구든 자신이
맡고 있는 기업을 세계적 초우량기업으로 가꾸려면 정도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사원이든 국민.대주주.고객이건 누구에게도 불신을 주지 않는다는게 기본
원칙이 돼야 합니다.

또 인재를 모아서 육성해야 합니다. 폐쇄적으로 가족끼리 경영자가 되는
방식을 답습해서는 최고의 인재를 모을 수가 없습니다.

경영은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지 경영이 경영하는 것도, 조직이 경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재경영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 정리 = 이학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