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가 모처럼 타협으로 파국의 위기를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정치권에도 새봄이 찾아오고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기초선거의 정당공천문제를 둘러싸고 극한대결을 벌여왔던 여/야가 14일
극적으로 절충안에 합의함으로써 한달간에 걸친 ''공천배제파동''이 가라앉게
되었다.

''기초단체장선거는 정당공천을 하고 기초의회만 정당공천을 하지 말자''는
이른바 ''반반론''을 민주당이 양보안으로 내놓고 민자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대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야당 의원들의 국회의장억류와 경찰력투입에 의한 강제해산 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온 여/야가 이처럼 원만한 타결을 이끌어낼수 있었던 것은 벼랑
끝에서 한발짝씩 물러나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민자당 일각에서는 민자당이 너무 양보했다는 불만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번
파동에서 민자당은 어느정도 목적을 달성했다고도 할수 있다.

기초 선거에서 정당공천이 끼치는 폐해를 부각시킴으로써 ''공천장사''에
흠집을 내는데 성공했고, 애당초 ''밑져보았자 본전인 장사''에서 기초의회
선거의 정당공천 배제를 부수입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야당으로서는 날치기를 당해 모두 다 빼앗기느니 아깝지만 떡 한귀퉁이를
떼내주는 선에서 파국을 막겠다는 계산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각자의 속셈이야 어떻든 이번에 여/야가 보여준 타협정신은 높이 사줄만한
것이다.

원래 정치란 대화와 타협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의정사는 크고
작은 일에서 타협보다는 극한 투쟁으로 얼룩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도 여당이 작년 여/야합의로 만들어진 통합선거법을 시행도 해보지
않고 개정하자고 불쑥 제안했을 때만 해도 ''또 무슨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고 국민들은 내심 불안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한달간 우리정치권은 ''날치기'' ''농성'' ''점거'' ''강제해산'' 등의
비생산적 용어들이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이 문제에만 매달려 기력을 소모
해 왔다.

우리는 이번 여/야간 타협이 땅에 떨어진 정치권의 대국민신뢰를 회복
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앞으로도 사사건건 격돌이 우려되는 지자체
선거 정국을 보다 성숙한 자세로 운영해 주길 당부한다.

더불어 우리 정치권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고 나아가 그 흐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제 화해와 협력과 창조라는 이 시대의 큰 흐름 맨 앞에 우리 정치권이
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