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다가 6.25사변이 터져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부모에게 이끌려 경기 안성군 공도명의 외갓댁으로 피난을 가서 결국
공도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비록 짧은 2년만의 졸업이었지만 건물만 남았을뿐 책.걸상이 전쟁중에
불타 없어지고 탄피 철 상자로 책상을 삼아 호롤불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그 시절.

외갓집이 시골에서는 상당한 부잣집임에도 피난 식구들이 많아 보리밥도
때로 찾아먹지 못하고 어렵게 지내던 그 시절이었지만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면서 멱도 감고 메뚜기 잡고 철없이 어울려 놀던 그때로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박한 서울생활 속에서 전후 좌우살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몇년전에
동창인 용국군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시발이 되어 어렵게 어렵게
수소문하여 찾아서 이제는 10여명 이상이 격월로 모임을 잦는 동창회로
발전을 하게되었다.

만남의 역사는 짧지만 학창시절 이야기, 엄하고 무서웠던 그러나 공부는
열심히 잘 가르쳐 주셨던 담임선생님의 뒷이야기.

어느 여학생이 어느 남학생과 특별히 가까웠다는둥 한번 이야기가 터지면
시간 가는줄 모르게 된다.

여늬 동창모임이 다 그렇겠지만 우정이 날로 소록 소록 피어나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

아직 동창회 이름도 짓지 못하였지만 현재 회장인 최명기군은 공부도
잘했고 줄곳 1등만 하더니 대기업인 금성사에서 근무하다가 자회사경영을
하고 있고 총무 허정군은 영관급으로 제대후 군계통의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으며 아랫집에 살던 최종희양은 딸을 많이 낳았지만 의사딸 고등하교선생
딸로 훌륭히 잘 키웠고 정종회양은 교장선생님 사모님이시고 최용국군은 돈
잘버는 기업의 사장님이시고 박민자양은 학교시절 키가 작아 앞줄에만
앉더니 교수부인이 되었고 허면장님 따님이신 허순자양 현모양처로 지금도
조용하며 중학교 선생이신 정수영양, 개인사업을 하는 김철웅군.

모두 모두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여 나날이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학교시절 아마 돈이 없어서 소풍을 못갔던 나를 위하여 부부동반 모교도
방문하고 단골 소풍지인 전설에 얽혀 있는 "무한성" 사찰을 찾아 보았다.

지금도 아주 깨끗하게 잘 정리 보존되어 있었으며 조금 멀리는 서운면의
신라 고찰 청룡사도 찾아서 기념촬영도 하고 저수지 근처의 횟집에서 점심도
거창하게 맛있게 즐기로 돌아온 일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