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소설로 알려진 것은 프랑스의 작가
줄 로맹(1885~1972.필명은 루이 앙리 장 파리굴)의 대하장편 "선의의
사람들"이다.

프랑스어판은 27권으로 1932~46년에,영어판은 14권으로 1933~46년에
각각 집필되었다.

이 소설은 4,959페이지의 분량으로 100페이지의 색인을 제외한
본문이 무려 207만여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실제와 가공의 인물이
250여명이나 등장한다.

1차대전후의 정치적 사회적 사상적 혼미시대를 거쳐 2차대전 전후의
시대적 움직임과 그 속에 부침하는 개인의 운명을 그린 일대 서사시이다
보니 방대한 작품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에 필적하는 것으로 일본의 작가 야마오카 쇼하치(산강장팔)가
쓴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를 들기도 한다.

일간신문에 1950~63년 장기연재된 것으로 책으로 엮어 20권 정도의
분량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약소국이었던 미카와(삼하)의 영주 이에야스가
도쿠가와막부를 세워 천하의 권력을 휘어잡기까지의 역정을 엮은
시대소설이다.

한국에서 나온 소설들의 길이도 정확히 측정된 바는 없으나 현재
묶여 있는 책의 권수만으로 따져본다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해방 이전에 발표된 소설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하장편으로는 단연
홍명희의 "임꺽정"을 꼽을수 있다.

1928~39년 일간신문에 연재되면서 작가의 투옥과 질병등으로 세번이나
중단된 미완성의 소설이긴 하지만 9권의 분량이 된다.

근년에 들어와 대하소설의 분량도 더욱 늘어나고 양산되기에 이르렀다.

김홍신의 "인간시장" 20권을 필두로 박경리의 "토지"16권과 송기숙의
"녹두장군" 12권이 그 뒤를 따른다.

황석영의 "장길산",조정래의 "태백산맥"도 각기 10권으로 그에 버금간다.

얼마전에는 작가 고원정이 "빙벽"이라는 전작소설 10권을 내놓아
화제를 모은 바도 있다.

최근에는 한글로 된 한국고전소설중 분량이 가장 많은 작품인 "완월회맹연
"을 현대어로 다듬어 묶은 12권이 출간되어 한국장편소설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게 되었다.

15세기후반 김시습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와 17세기초 허균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에서 비롯된 한국고전소설의 작품구성과 표현기교가 19세기초
작자미상의 "완월회맹연"에서 만개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한국소설가들의
대하장편소설 집필 저력이 여기에서 나온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