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그룹의 부도파문이 벌써 1주일째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새삼 발견하는 것은 부도기업에 부동산등 담보를
제대로 잡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과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에
희비가 크게 엇갈리는 현실이다.

신용대출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줄곧 강조돼 왔다.

높이 평가되는 신용대출이라해도 부도로 기업이 쓰러지면 그 대출은
부실대출이 되고 대출심사는 잘못된 것으로 평가된다.

대출심사가 제대로 된 신용대출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부실대출이
되는 위험을 안게 된다.

신용대출에 따르는 이런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것이 담보대출이다.

담보위주 대출관행이 고질화돼 있는 사회에서 신용을 바탕으로 한
금융거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신용사회를 열어가자고 선언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을 비롯한 각종 금융기관은 담보잡고 돈빌려주는 전당포가
아니다.

담보는 없으나 장래성있는 기업에 자금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신용대출을 가능케 하는 방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기업의 장래성과 사업성을 평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금융개방은 물론 신용평가업 자체도 개방되어야 할 처지에 있다.

외국 신용평가회사들의 국내진출이 눈앞에 다가왔다.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 또 신용사회를 열어가기 위하여 신용평가제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현재 신용평가 회사는 3개나 있지만 담보위주 대출관행때문에 신용평가업무
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신용평가 그 자체에 대한 인식도
낮다.

지난해 정부는 복수 신용평가를 의무화하는등 신용평가제도 개선방안을
도입했지만 신용평가제도는 걸음마단계에 머물고 있다.

신용평가기관은 대개의 기업들을 어음할인이나 지급보증을 받을수
있는 기준으로 평가해 놓고 금융사고가 나면 해당 기업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는 일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덕산과 삼도의 경우도 그랬다.

건강하다고 했다가 사망한 뒤에야 원래 건강이 나빴다고 말을 뒤집는
식이다.

신용평가제란 망할지 안망할지,꾼돈을 갚을수 있을지를 사전에 등급으로
매기는 것인데도 말이다.

직접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도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를 제대로
믿지 않을뿐 아니라 담보위주 관행에 젖어 스스로도 대출심사 기능을
강화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

최근 부도사태가 이어지자 금융기관에서는 새삼 대출심사기능 강화를
다짐하고 있으나 이게 과거처럼 조건반사적 임기응변식 대응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제는 정확한 신용평가와 신용대출의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가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