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의 항변을 듣고 있던 경환 선녀가 다시 가경을 향하여 오른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가경은 옷 벗는 일을 잠시 멈추고 다소곳이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하긴 이미 옷은 거의 다 벗겨져 마지막 속곳들만 남아 있는 셈이었다.

가경은 어디서 났는지 벽사(벽사:모기장처럼 엷고 푸른 천)로 벗은
몸을 살짝 가렸다.

벽사로 가려진 그 모습이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내 말씀을 좀 들어보세요.

내가 당신이 천하고금을 통하여 제일 음란하다고 했는데, 음란에도
두가지 종류가 있지요.

세상에서 흔히 보는 호음자들은 용모가 아리따운 여자를 그냥 두는
적이 없으며, 노래나 춤에 빠져 계집들과 히히덕 거리는데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여자들과 시도 때도 없이 육체 관계를 맺으려고
기를 쓰며, 천하의 미인들을 다 건드려보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워
하는 자들인데, 이런 자들은 피부의 땀구멍 하나하나에서도 음란이
줄줄 흘러나오는 추물들이죠.

그런데 당신은 이런 호음자들의 음란과는 다른 치정을 천성적으로
타고 났어요. 우리는 이것을 의음이라고 하지요"

"의음이라구요?"

보옥은 하도 복잡해서 이제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이 의음이라는 두 글자는 마음으로만 이해할수 있을뿐, 입으로는
그 뜻을 전달하기가 어렵지요.

굳이 설명을 한다면 정신적인 음란이라고나 할까요.

당신은 지금 의음으로 가둑차 있으므로 규방 안에서는 여자들과
다정하게 즐기며 그녀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줄 수 있지만,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 당신은 사람들의 놀림감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지요.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거기다가 괴팍한 성질까지
부리니까요.

그래서 오늘밤 이 규방에서 가경이와 열락을 맛보도록 하는 거예요.
자, 보세요"

경환 선녀가 또 한번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가경이 벽사를 거두고는
조심조심 나머지 옷을 벗었다.

옷을 다 벗자 다시 벽사로 몸을 가리고는 보옥 앞에 반듯이 누웠다.

비록 벽사로 가리긴 하였으나 허연 맨살과 검은 음모가 훤히 비쳐
보였으므로 보옥은 눈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세요. 여기 여자의 두 젖가슴이 있지요?
애기에게 젖을 먹이는 유방인 동시에 쾌락의 폭약과 같은 젖가슴
이지요. 여기 젖꼭지 있잖아요? 이건 쾌락의 뇌관과 같지요.

이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만져주거나 입술로 빨아주면
빳빳하게 일어나면서 여자의 온 신경이 쾌감으로 조여들게 되지요"

경환 선녀가 탐스럽게 봉긋이 솟은 가경의 젖가슴을 가리키며
설명해나갔다.

보옥은 차츰 여체의 신비에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