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생산현장] (4) 일본의 세계화..유지수 <국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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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세계화에 관심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 일본을 돌아보는 것은 유익하다.
왜냐하면 일본만큼 세계화를 일찍부터 추진해온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벤치마킹의 천재들이다.
이미 16세기부터 유럽의 좋은 점은 모두 받아들여 소화해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의 갑옷은 스페인 것을 모방한 것이고,근대
일본육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육군을,해군은 당시 무적의 영국 함대를,
헌법은 프러시아 것을 기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일본의 벤치마킹은 한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최상의 것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입으로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대원군의 망령에 시달리고있다.
심한 경우 애국은 외세배척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대원군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이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정도다.
흔히 표출되는 반미 반일감정은 세계화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득이 없는 발상일 때가 많다.
업무상 여러나라의 외국인을 만나다 보면 그들에게 투영된 우리의
모습을 그려볼수 있다.
대만 일본 홍콩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는 것을 들으면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하는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에서 가장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 서울이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아직도 우리는 표지나 안내문을 한글 이외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한글과 한국민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 과연 애국이며 우리의 발전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봐야 할 시기다.
세계화는 과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실리 추구의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94년은 한국 방문의 해였다.
방문의 해로 정하기는 했으나 우리의 불친절함은 여전했으며 방문객을
위한 서비스도 특별히 달라진것이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동경의 미쓰코시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종업원의
인사를 적어도 네번은 받는다.
물건을 사면 이를 열심히 닦고 포장하여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뿐이다.
일본 슈퍼마켓에서 일본 종업원이 잘못하여 산 물건 하나가 빠져있었다.
이를 전화로 알렸더니 슈퍼마켓 매니저가 물건을 가지고 집까지
달려온 적이 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로 곱게 포장한 타월까지 들고와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몇번이고 하고 갔다.
과거 수년간 우리나라 백화점의 물건값은 상당히 상승하였으나 서비스의
개선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 다수의 반응이다.
물건값은 올랐지만 물건과 서비스는 마찬가지라고 하면 경쟁력이 없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극일은 마라톤에서 일본을 이겼다고 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극일이 구호의 외침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극일은 이들의 서비스정신을 능가할수 있는 우리 나름대로의 서비스정신
개발과 이를 세계화와 접목시키려는 시도에서 부터 시작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
이런 상황에서 이웃 일본을 돌아보는 것은 유익하다.
왜냐하면 일본만큼 세계화를 일찍부터 추진해온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벤치마킹의 천재들이다.
이미 16세기부터 유럽의 좋은 점은 모두 받아들여 소화해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의 갑옷은 스페인 것을 모방한 것이고,근대
일본육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육군을,해군은 당시 무적의 영국 함대를,
헌법은 프러시아 것을 기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일본의 벤치마킹은 한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최상의 것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입으로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대원군의 망령에 시달리고있다.
심한 경우 애국은 외세배척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대원군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이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정도다.
흔히 표출되는 반미 반일감정은 세계화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득이 없는 발상일 때가 많다.
업무상 여러나라의 외국인을 만나다 보면 그들에게 투영된 우리의
모습을 그려볼수 있다.
대만 일본 홍콩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는 것을 들으면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하는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에서 가장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 서울이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아직도 우리는 표지나 안내문을 한글 이외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한글과 한국민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 과연 애국이며 우리의 발전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봐야 할 시기다.
세계화는 과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실리 추구의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94년은 한국 방문의 해였다.
방문의 해로 정하기는 했으나 우리의 불친절함은 여전했으며 방문객을
위한 서비스도 특별히 달라진것이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동경의 미쓰코시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종업원의
인사를 적어도 네번은 받는다.
물건을 사면 이를 열심히 닦고 포장하여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뿐이다.
일본 슈퍼마켓에서 일본 종업원이 잘못하여 산 물건 하나가 빠져있었다.
이를 전화로 알렸더니 슈퍼마켓 매니저가 물건을 가지고 집까지
달려온 적이 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로 곱게 포장한 타월까지 들고와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몇번이고 하고 갔다.
과거 수년간 우리나라 백화점의 물건값은 상당히 상승하였으나 서비스의
개선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 다수의 반응이다.
물건값은 올랐지만 물건과 서비스는 마찬가지라고 하면 경쟁력이 없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극일은 마라톤에서 일본을 이겼다고 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극일이 구호의 외침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극일은 이들의 서비스정신을 능가할수 있는 우리 나름대로의 서비스정신
개발과 이를 세계화와 접목시키려는 시도에서 부터 시작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