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봉우리 첩첩 경기를 둘러 쌌고/흐르는 장강은 국성을 휘감았다//
아름다운 이 형승 바로 천성이 아닌가/왕경이 될라치면 이런 것인가 보다"

조선조 개국공신이었던 권근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서울을 찬상한
것이다.

그때만해도 북한산과 남한산 관악산등 자연방벽으로 둘러 싸이고 한강이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서울이야 말로 신이 내린 축복을 한껏 받은 도시
였음에 틀림없다.

우거진 숲과 맑은 물이 있는 도시-.

소음과 매연 차량이 넘치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도시공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만으로도 향수를 느끼게 하기에 족하다.

그러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훼손하지 않고 몇백년동안 그대로 간직해온
고도들이 수없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알프스산록과 도나우강변을 끼고 위치해 있는 오스트리아의 빈은 그
대표적인 도시일 것이다.

세계의 어느 대도시보다 축복받은 자연조건을 갖춘 서울이었음에도 오늘날
에는 맑은 공기와 물을 그리워하게하는 잔인한 도시로 변모해 버리고
말았다.

산업화이후 개발이라는 상속에서 맑은 공기의 공급원인 산들이 줄곧
훼손되어 왔고 시민들의 식수원인 한강도 오염의 중병을 앓아 왔다.

선진국 대도시들의 선례로 미루어 볼 때 강물의 오염은 치유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지만 산의 훼손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복원될수 없다는게
경험적 교훈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서울시내외의 자연녹지공간이 파괴된 것은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

시내의 자연공원 역할을 했던 숲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하면 주산들
인 북한산 남한산 관악산마저 이런 저런 이유로 침식을 면치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가 이번에 내놓은 관악산 도시자연공원조성계획도 파괴개발행정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곳에 운동 집회 공연 휴게 청소년교육 야유회등의 시설이 들어서려면
자연경관의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구미의 많은 도시들이 남아있는 자연공간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건물이
들어찬 지역에도 녹지대를 만들어 가는 추세에 비추어 본다면 서울시의
그러한 계획은 퇴영적인 발상일 수밖에 없다.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근시안적 전시효과적 행정의 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다.

"푸르름은 도시의 거친 면모를 부드럽게 만든다"는 말을 당국자들은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