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의 허복선회장(63).

제일중기 회장으로서 지난해 여성경제인 모임의 총수자리에 오른 허회장은
우리나라 여성기업인으로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58년 남편과 함께 기계공업회사를 출범시킨 이래 37년여동안 줄곧
외길인생을 걸어오고 있다.

특히 부산지역에서는 여성경제인연합회의 부산지회뿐 아니라 각종 여성단체
의 일을 도맡고 있어 여성계의 ''대모''로 일컬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허회장의 새해를 맞는 각오는 남다르다.

올해가 UN이 ''세계여성의 해''를 선포한지 20년이 되는 해인데다 여성경제계
에도 국제화,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회장은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여성경제인 연합회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 허회장 =여성경제인상호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발전과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나아가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아래 지난 76년에
출범했습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전주등 6개지부에 2백5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습니다.

섬유 신발 기계등 제조업과 무역 유통 서비스업등 다양한 업종에
분포돼 있지요.

-올해는 유엔이 지난75년 사상 처음으로 "세계여성의 해"를 선포한지
20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허회장께서 올해중 여성경제인사업을 통해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 허회장 =여성기업인들이 국제화 세계화시대에 발맞춰 나갈수 있도록
외국기업인들과의 교류폭을 크게 넓힐수 있도록할 작정입니다.

이를 위해 북경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대회에 앞서 5,6월께 회원들의
중국방문을 추진하고 오는 11월에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여성기업인
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또 국내 6개지부별로 동남아지역을 중심으로한 해외여성기업인과
자매결연을 맺도록 할 계획입니다.

최근들어 중국의 상해 심양 대련 북경 남경,일본의 교토 도쿄 오사카,
싱가포르등지로부터 자매결연 제의를 받아놓고 있기도 합니다.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여성경제인들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올해는 대전 춘천등 국내 2곳과 일본의 1곳등에 각각 지부를 결성하고
회원수도 크게 늘릴 생각입니다.

이와함께 곳곳에 난립돼 있는 여성경제인 모임을 결집시켜 한국여성경제인
연합회를 명실상부한 여성경제인의 구심체로 만들고 싶습니다.

-허회장께서 경제계에 뛰어들어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해오는
동안 실제로 달라진점도 많고 또 그렇게 느껴지지요.

<> 허회장 =많이 달라졌지요.

제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해도 여자는 술한잔을 마셔도 허물이
됐을뿐아니라 기계공장엔 여자가 드나들면 재수가 없다고들 했습니다.

저도 남편의 이해와 나의 경영능력에 대한 인정이 없었다면 집에서
아이들이나 돌보고 있었겠지요.

요즘은 어디 그렇습니까.

여성지위향상을 그동안 법률적 제도적 장치도 많이 마련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면이 많다고 봅니다.

-미흡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앞으로 여성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 허회장 =요즘 사회에서는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어느정도 전문성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되고있고 성은 별로 따지지
않는 추세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여성들도 자신이 몸담고 싶어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지식을 연마,축적해 나가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에 적극
동참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또 여성들 모두가 여성의 권리를 확보하는데 있어서 단합,연대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허회장 개인에 대한 스토리는 그야말로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경제계에 뛰어들게된 동기부터 소개해 주시지요.

<> 허회장 =어렸을 때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으나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면서 "사업가"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실업인 아버님덕에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습니다.

지난 51년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보수적인 부모님을 설득해 은행(한국상업은
행 진주지점)에 취직했습니다.

직장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등으로 1년반만에 직장을 정리하고
대학진학을 결정했지요.

공학계통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집안어른들의 강한 권고때문에 효성여대
가정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기필코 엔지니어출신의 남편을 만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게 됐습니다.

대학2학년 재학중 마침 공학도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 강종대씨로부터
혼담이 들어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 꿈을 구체화할수 있었습니다.

-창업하는 과정이 아주 드라마틱했다고 들었습니다만.

<> 허회장 =저희 부부는 사업을 공동의 꿈으로 삼고 돈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친정에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낮에 일하는 대한제강외에 저녁에 다닐 수 있는 직장을 구해
두곳에서 일했지요.

저는 집에서 염소를 키우면서 살림을 꾸려나갔고요.

새벽4시에 일어나 염소 젖을 짜 내다 파는등 하루에 서너시간 자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그야말로 고생스런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기를 4년여.마침내 기계 1대를 살수있는 10만원을 모았지요.

그 기계1대에 남편과 종업원 한사람이 전 직원인 제일기계공업사를
부산진구 범일동에서 출범시켰지요.

그때가 58년 8월31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계공업의 불모시대였지요.

그로부터 올해로 38년째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종업원 2백40여명에 연간 매출액이 1백50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성기업인으로서 특별히 어려움을 당한적은 없었습니까.

<> 허회장 =여성이라고 해서 불이익이나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업외적인 측면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하나 신경쓸일이
많았었지요.

남자들만 일하는 공장에 드나들며 눈길을 끌까봐 치마를 입지 못했고
해지기전에 현장에 들어가지 않기위해 어두운 밤에 밥을 날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오래 지속되다보니 일상생활화 돼 버렸지요.

-37년여동안 기계공업 한 분야에만 몰두해온 까닭이 있습니까.

<> 허회장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분야의
전문가가 돼야만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엔지니어출신이어서 기계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기계국산화에 매달려 온 탓도 있지요.

그래서 남편은 가끔 저에게 안쓰런 표정까지 지어가면서 "당신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큰 기업인이 돼있을 텐데"라는 말을
내뱉곤 한답니다.

-그동안 국산화시킨 걸작품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 허회장 =국산 1호작품은 21년전인 지난74년 제작한 것으로 섭씨
1천8백도에 견딜수 있는 내화벽돌을 생산할수 있는 "키룬드라이"입니다.

당시 삼화화성에 공급했지요.

그뒤 국산화작품이 줄을 이었지요.

특히 국내최초로 개발한 더블액션프레스 CNC 호빙머신등은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그동안의 가정생활은 어떠했는지요.

<> 허회장 =초창기부터 남편과 철저한 이해속에 출발했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남편이 맡고 자금과 인사분야는 제몫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영역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지요.

또 단순한 부부가 아니라 동업자의 길을 걷다보니 "여보""당신"보다
"허회장","강사장"이란 호칭을 더 자연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아들 3형제가 있는데 첫째 둘째는 외국유학을 마친뒤 회사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셋째는 일본 오사카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생활철학으로 삼고있는 좌우명을 소개해 주시지요.

<> 허회장 ="선을 쌓으면 반드시 좋은 경사가 온다"는 보시(포시)정신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릇에 무엇이 넘쳐 흘러 버리기 전에 그것을 떠서 남에게 베푼다는
자세로 생활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기업도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오늘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끝으로 후배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 허회장 =우리세대는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요즘 30,40대
사장들은 과학적 교육과 새로운 이론 정보등을 밑바탕으로 창업에 나서
선배들을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선배들을 존중할 줄 알면서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실력을 배양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업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할수 있는 기회와 행운도 따를
것입니다.

또 "여성"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나름대로의 규범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대담=최종천사회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