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칼럼] 잘했다는 것의 독점과 폭리..김진현 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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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오전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는 경찰의 고문으로
생명이 끊긴 전서울대생 박종철군 8주기추모식이 열렸다.
"고문없는 세상에 살고싶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1백여명의 추모객들
앞에서 먼저 간 아들의 제삿상에 술을 따르는 박정기씨는 아직도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처럼 가슴에 한이 맺힌 사람들은 "그날"이 오기전에는 지난
일을 잊을수도 편히 쉴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들을 잃은 어버이의 한,어쩔수 없이 운동가로 변신한 박씨가 기다리는
"그날".우리는 모두 남의 것일수 없는 그 비극에 한 울문.연민.사랑을
느낀다.
"그날"박씨가 뜻하는 그날은 무엇일까.
아주 자명하다.
그러나 천착해 보면 반드시 자명한 것도 아니다.
"그날"의 한을 품은 사람들은 정말 많다.
어쩌면 한반도를 가장 많이 배회하는 괴물은 이념도,외세도,통일병도,
공해라기보다 그 많고 많은 원통한 생명들의 한 일것이다.
94년 성수대교에서 생명을 바친 억울한 희생자들,박종철군처럼 87년에
죽고 다친 많은 사람들,그보다 더 많은 80년이 가장 아픈 사람들,60~79년이
누구보다 더 아픈 많고 많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 역사항 가장 많은 생명이
죽고 다치고 가족잃고,집잃고 고향을 모두 잃은 6.25의 사람들(그때 국민
모두)의 한.그리고 일제폭정과 대동아전쟁에서타율적인 개죽음의 원혼들.
3.1독립운동(전쟁)에 바친 생명들.중국 만주 시베리아 하와이에서의 망명
독립선열들의 처절한 최후들. 아직도 사할린 연변 타쉬켄프 알마타
타지크스탄 오사카 로스엔젤레스에서 3세대 4세대에 걸쳐 퇴적된 한교의
눈물들. 억압.폐쇄.빈곤.무지에 희생되고있는 북쪽 2천만생명의 한.
더이상 과거를 올리지 말자.여기까지가 근대사 백년의 비극이요 한이다.
시간의 마디 마디마다 겪은 과거 "그날"의 비극은 달랐을지라도
그 모두가 기다리던 미래 "그날"의 소망은 크게보면 결국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날의 한들의 상대적 비교는 하지 말자.이 비극의 상대적
비교에서는 우리는 누구도 승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1백년의 반듯이 떳떳하지 만은 않했던 우여곡절,반듯이 자랑스럽
지만은 않은 자율과 타율의 선택,반듯이 비난해야만 했던 것은 아닌 개화와
폭력,반듯이 나쁜숙명이라고만 할수없는 지정학적위치,이들의 결과로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문화,지구사회의 주류,중심에 섰다.
민주정치,시장경제,다원사회,대한민국이 결과로서 선택하고 일구어온
이들 가치이념체제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민족은 처음으로 인류의
중심무대에 올라선 것이다.
이제 한세기 한시대가 끝나면서 세계화,지구인류공동체화,정보화,지식
사회화의 문명사적 대변혁이 전개되고 있다.
1945년 2차대전후 새로 독립 광복한 나라들 가운데서는 민주주의
경제성장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의 흡수에서 단연 으뜸가게 성공한
우리가 이 문명사적 대변혁의 새 역사적 도전앞에서도 자주 과거로해서
발목이 잡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많은 "그날"의 한들,"그날"의 희생들,"그날"의 소망들이 합치고
삭히고 쌓여서 오늘을 이루었다는 합의가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이다.
누가 더 잘했느냐만 따지고 누가 덜 잘못했느냐를 주목하지 않기때문이다.
더 나가 한번 "잘했다는 것"이 훈장들을 너무 비싸게 팔려하고 한번
성공의 폭리로 자기잘못의 다은면을 완전히 덮으려 하기때문이다.
한때 한 가지 한 부분만 잘한 기록들은 이땅의 오진 조건에서는
지도자나 백성들이나 얼마든지 있다.
우리 오늘의 성취나 미래의 도전이나 모두 한 두가지만 잘해서 되었거나
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는 독재자를 타도해야만 하지만 그 완성은 자치문화가 사회공동체에
고루 스며들어야 한다.
성수대교식 경제성장의 기적은오히려 본질적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미소대결의 냉전만 끝나면,"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만 부르면,
통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력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역량(통일방해
외세 억지능력 포함)이 있어야 통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평범한 진실에 충실하고 진지하지 않다.
한강의 기적, 민주화 투쟁,통일"운동"들이 모두 한두가지 자기들의
잘한 것만 남의 못한 것만 비교하고 있다.
이 잘했다는 것의 방법과 과정의 독선적 단선적 편법적 폭력적 오류와
갈등적 그늘(음영)의 결과에는 의식적으로 눈감고 침묵한다.
지금 몇몇 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은 한국 현대사가운데 어떤 한토막
한가지 한때의 잘한 것을 자기개인의 공으로 독점하기도 하고 이미
빛바랜 훈장을 과시하며 폭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미래를 창조하고 개척해야하는 오늘 우리의 심성과 자세는 나의
잘한 것보다 남의 잘한 것을,나의 잘한 것보다 남의 덜 잘못한 것을,
그리고 누가 잘했느냐보다 누가 덜 잘못했느냐를 분별할줄 아는 것이라야
한다.
선의 적은 악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말이나 민주주의는 최선의 정치제도가
아니라 가장 덜 잘못된 제도라는 말을 되새겨 볼때이다.
있음이 본래 있음이 아니요 그렇다고 없음이 없음도 아니다.
변한 것은 일찌기 변한 것이 아니요 변하지 아니한 것도 또한 변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다(각성스님 강술대도직지에서).모두 종교를 믿고있는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이런정도의 종교적 경지면 과거 한가지 잘한것의
독점과 폭리때문에 아직도 굴레를 벗지못하고 있는 과거정리 문제가
자율적으로도 풀수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0일자).
생명이 끊긴 전서울대생 박종철군 8주기추모식이 열렸다.
"고문없는 세상에 살고싶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1백여명의 추모객들
앞에서 먼저 간 아들의 제삿상에 술을 따르는 박정기씨는 아직도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처럼 가슴에 한이 맺힌 사람들은 "그날"이 오기전에는 지난
일을 잊을수도 편히 쉴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들을 잃은 어버이의 한,어쩔수 없이 운동가로 변신한 박씨가 기다리는
"그날".우리는 모두 남의 것일수 없는 그 비극에 한 울문.연민.사랑을
느낀다.
"그날"박씨가 뜻하는 그날은 무엇일까.
아주 자명하다.
그러나 천착해 보면 반드시 자명한 것도 아니다.
"그날"의 한을 품은 사람들은 정말 많다.
어쩌면 한반도를 가장 많이 배회하는 괴물은 이념도,외세도,통일병도,
공해라기보다 그 많고 많은 원통한 생명들의 한 일것이다.
94년 성수대교에서 생명을 바친 억울한 희생자들,박종철군처럼 87년에
죽고 다친 많은 사람들,그보다 더 많은 80년이 가장 아픈 사람들,60~79년이
누구보다 더 아픈 많고 많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 역사항 가장 많은 생명이
죽고 다치고 가족잃고,집잃고 고향을 모두 잃은 6.25의 사람들(그때 국민
모두)의 한.그리고 일제폭정과 대동아전쟁에서타율적인 개죽음의 원혼들.
3.1독립운동(전쟁)에 바친 생명들.중국 만주 시베리아 하와이에서의 망명
독립선열들의 처절한 최후들. 아직도 사할린 연변 타쉬켄프 알마타
타지크스탄 오사카 로스엔젤레스에서 3세대 4세대에 걸쳐 퇴적된 한교의
눈물들. 억압.폐쇄.빈곤.무지에 희생되고있는 북쪽 2천만생명의 한.
더이상 과거를 올리지 말자.여기까지가 근대사 백년의 비극이요 한이다.
시간의 마디 마디마다 겪은 과거 "그날"의 비극은 달랐을지라도
그 모두가 기다리던 미래 "그날"의 소망은 크게보면 결국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날의 한들의 상대적 비교는 하지 말자.이 비극의 상대적
비교에서는 우리는 누구도 승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1백년의 반듯이 떳떳하지 만은 않했던 우여곡절,반듯이 자랑스럽
지만은 않은 자율과 타율의 선택,반듯이 비난해야만 했던 것은 아닌 개화와
폭력,반듯이 나쁜숙명이라고만 할수없는 지정학적위치,이들의 결과로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문화,지구사회의 주류,중심에 섰다.
민주정치,시장경제,다원사회,대한민국이 결과로서 선택하고 일구어온
이들 가치이념체제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민족은 처음으로 인류의
중심무대에 올라선 것이다.
이제 한세기 한시대가 끝나면서 세계화,지구인류공동체화,정보화,지식
사회화의 문명사적 대변혁이 전개되고 있다.
1945년 2차대전후 새로 독립 광복한 나라들 가운데서는 민주주의
경제성장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의 흡수에서 단연 으뜸가게 성공한
우리가 이 문명사적 대변혁의 새 역사적 도전앞에서도 자주 과거로해서
발목이 잡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많은 "그날"의 한들,"그날"의 희생들,"그날"의 소망들이 합치고
삭히고 쌓여서 오늘을 이루었다는 합의가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이다.
누가 더 잘했느냐만 따지고 누가 덜 잘못했느냐를 주목하지 않기때문이다.
더 나가 한번 "잘했다는 것"이 훈장들을 너무 비싸게 팔려하고 한번
성공의 폭리로 자기잘못의 다은면을 완전히 덮으려 하기때문이다.
한때 한 가지 한 부분만 잘한 기록들은 이땅의 오진 조건에서는
지도자나 백성들이나 얼마든지 있다.
우리 오늘의 성취나 미래의 도전이나 모두 한 두가지만 잘해서 되었거나
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는 독재자를 타도해야만 하지만 그 완성은 자치문화가 사회공동체에
고루 스며들어야 한다.
성수대교식 경제성장의 기적은오히려 본질적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미소대결의 냉전만 끝나면,"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만 부르면,
통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력으로 통일할 수 있는 역량(통일방해
외세 억지능력 포함)이 있어야 통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평범한 진실에 충실하고 진지하지 않다.
한강의 기적, 민주화 투쟁,통일"운동"들이 모두 한두가지 자기들의
잘한 것만 남의 못한 것만 비교하고 있다.
이 잘했다는 것의 방법과 과정의 독선적 단선적 편법적 폭력적 오류와
갈등적 그늘(음영)의 결과에는 의식적으로 눈감고 침묵한다.
지금 몇몇 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은 한국 현대사가운데 어떤 한토막
한가지 한때의 잘한 것을 자기개인의 공으로 독점하기도 하고 이미
빛바랜 훈장을 과시하며 폭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미래를 창조하고 개척해야하는 오늘 우리의 심성과 자세는 나의
잘한 것보다 남의 잘한 것을,나의 잘한 것보다 남의 덜 잘못한 것을,
그리고 누가 잘했느냐보다 누가 덜 잘못했느냐를 분별할줄 아는 것이라야
한다.
선의 적은 악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말이나 민주주의는 최선의 정치제도가
아니라 가장 덜 잘못된 제도라는 말을 되새겨 볼때이다.
있음이 본래 있음이 아니요 그렇다고 없음이 없음도 아니다.
변한 것은 일찌기 변한 것이 아니요 변하지 아니한 것도 또한 변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다(각성스님 강술대도직지에서).모두 종교를 믿고있는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이런정도의 종교적 경지면 과거 한가지 잘한것의
독점과 폭리때문에 아직도 굴레를 벗지못하고 있는 과거정리 문제가
자율적으로도 풀수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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