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각료회의가 소집되었다.

교토에 와있는 각료들만으로 지난 날의 황실이었던 곳에서 회의를 개최
했는데, 분위기는 처음부터 무거웠다.

구마모토현 지사로부터 보고되어 온 전신 내용을 죽 읽어보인 다음
오쿠보는 말했다.

"한마디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오. 나는 사이고가 직접 반기를 들고
우리 정부에 도전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그것은 곧 천황폐하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오.

그는 결코 천황폐하를 향해 칼을 빼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아오. 무언가 일이 잘못된 게 틀림없소. 내가 직접 가서 사이고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오해가 있으면 풀고, 섭섭한 감정이 있으면 화해를 할까
하오. 그래서 어떻게든지 다시 우리 일본이 내전에 휘말리는 것을 막아볼
생각이오"

그의 인조수염이 빳빳하게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오쿠보의 기색을 남달리 예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일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때는 늦었어요. 오쿠보 도노가
가신다고 하더라도 사이고를 만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기리노와 시노하라 등이 호락호락 만나게 해줄 것 같습니까? 오히려 그들
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험이지요. 오쿠보 도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국가와 우리 정부를 위해서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분명히 반대합니다"

이토가 서슴없이 그렇게 가로막고 나선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오쿠보의 그 제의가 그의 진심이라기 보다도 체면치레의 발언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오쿠보는 이토와의 사석에서 몇차례 가고시마 사태에 대하여 자기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 쪽에서 먼저 도발을 해오면 단호히 응징을 해
버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두고서는 도저히 국정을 제대로 펼쳐나갈 수가 없다면서 은근히
어서 도발해 오기를 바라는 식으로 얘길 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내심과는 정반대되는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지껄이는 것을
보고 이토는 속으로 흠, 이 능구렁이. 싶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한술 더 뜨듯 시치미를 뚝 떼고 당당히 반대 의견을
개진했던 것이다. 그의 환심을 사려고 말이다.

이토의 말에 각료들이 모두 찬동하여 오쿠보의 제의는 부결되었다.

결국 오쿠보는 자기의 체면만 세우고 슬그머니 물러앉는 격이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