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기를 암살하려고 들다니. 분노가 치솟는 듯 잠시 두 눈을 감고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 있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이오?"

"예, 정말입니다. 도쿄의 경시청에 근무하던 경찰관 스물세놈이 비밀지령을
받고 잠입해 왔지 뭡니까. 그 우두머리를 붙들어 자백을 받았답니다. 나머지
녀석들도 지금 모조리 색출해 내고 있는 중이고요"

"음- 믿을 수가 없구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인 걸
어떻게 합니까. 난슈 도노, 그 지령을 누가 내렸겠습니까?"

"그만하오. 내가 좀 어지럽구려. 잠자리에 들어야겠소. 모두 돌아가 주기
바라오"

사이고는 핑 현기증을 느끼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 여덟사람은 근심스럽고 곤혹스럽기도 한 그런 표정들을 지으며 사이고
앞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기리노는 무라다와 단둘이서 밤에 사이고를 찾아갔는데, 이번에는
나카하라를 비롯한 암살단원들을 취조한 서류와 그들의 자백서를 모조리
가지고서였다.

"난슈 도노, 이 서류들이 자객들을 조사한 기록입니다. 이것은 우두머리인
나카하라가 자기 손으로 쓴 자백서지요. 한번 읽어 보시죠"

기리노가 건네주는 나카하라의 자백서를 받아 읽어내려가는 사이고는 절로
미간에 굵은 주름이 접히고 있었다.

다 읽고나자 그 자백서를 살짝 기리노 앞으로 던졌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음-"

"지금 시내는 온통 야단이 났습니다. 난슈 도노를 암살하러 온 자객들을
체포해서 취조한 사실을 공표했거든요. 당장 도쿄로 진격해서 오쿠보의 목을
치자고 흥분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른다니까요. 특히 사학교 학생들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탭니다"

사이고는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만약 결단을 내리시지 않아도 이제는 도리가
없습니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셈이니까요"

"난슈 도노, 아무쪼록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무라다도 간곡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사이고는 눈을 떴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동지들이 알아서 하오. 내 몸을 동지들에게 맡기겠소"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