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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올해로 꼭 5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사할린한인문제 종군위안부문제 등도 남아
있다.

그런가운데서도 패전국 일본은 전후의 폐허에서부터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고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국제적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일본국내에서도 개헌 등을 통해 강력한 일본을 지향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일본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오늘의 일본을 점검한다.

< 편 집 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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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대전이후의 세계는 소련의 붕괴와 일본의 성장으로 대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전국으로 전락했던 일본은 경제적 부활에 성공한데 이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마저 노리고 있다.

고노 요헤이외상은 지난해 9월말의 유엔총회에서 일본이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세계를 향해 일본을 정치적 지도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외치고 나선 것이다.

더이상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에만 만족하고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고노외상의 선언은 이제 일본의 꿈을 실현할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경제적 정치적 활동을 감안할때 일본의 상임이사국진출에 더이상 제동을
걸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일본은 그동안 상임이사국진출을 위해 여러가지로 길을 닦아왔다.

지난92년유엔총회에서는 호소카와당시총리가 일본의 역할확대론을
부르짖었고 유엔주재대사등도 기회 있을때마다 이와관련된 발언을 하는등
분위기만들기에 대단한 집념을 보여왔다.

일본의 상임이사국진출추진에 가장 힘이 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거대한 경제력이다.

일본은 과거 세계를 제패한 시절의 영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최대의 채권국이다.

매년1천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거대한 무역흑자를 만들어내면서 엄청난
해외투자를 해댄 덕택이다.

92년말현재 미국의 대외총자산이 5천2백13억달러의 마이너스인 반면 일본은
5천1백36억달러의 플러스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93년현재 4조2천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6조2천억달러의 3분의2수준에 달한다.

1인당GDP에서는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제일로 부상했으며 미국에 비해서는
1만달러가량이나 앞선다.

93년말현재 미국의 1인당GDP는 약2만4천4백달러인 반면 일본은 3만3천7백
64달러에 이른다.

더구나 일본은 현재 유엔재정의 12.5%를 부담, 미국에 이어 제2위의
비용부담국이다.

영국 프랑스 중국등 3개상임이사국의 몫을 합한 금액만큼을 부담하고 있다.

앞으로도 일본의 부담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게 돼있다.

유엔이란 기구자체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볼때도 일본의 상임이사국진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적 분위기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도 상임이사국진입을
위한 실적쌓기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캄보디아 모잠비크의 PKO활동에 참여한데 이어 다른 선진국들도 참여를
꺼리는 르완다에까지 자위대를 파견했다.

세계적 경제대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PR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같은 대외적 측면뿐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군사적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뒷받침으로 작용할 수있는 움직임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은 개헌논의다.

일본의 개헌논의는 복잡한 정치사정으로 잠시 잠복해 있었지만 최근들어
다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 신문인 요미우리신문조차 개헌을 주장하면서 독자적 개헌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개헌논의의 초점은 헌법9조다.

일본의 군사적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이조항을 수정, 융통성있는 활동을
확보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조항을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논란이 거듭돼왔지만 최근엔 북한의 핵의혹
PKO활동등을 이유로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의 진입을 위한 국민들의 뒷받침도 대단하다.

일본외무성이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체국민의 52.9%가
상임이사국진출을 지지, 반대 14.8%를 압도적으로 앞섰다.

한 언론기관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역시 찬성이 68%로
반대 23%를 3배나 웃돌았다.

일본의 안보리상임이사국진출과 PKO활동참여는 제2차대전이후 억제돼온
일본의 군사활동에 숨구멍을 터주는 역할도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PKO란 좋은 명분을 활용, 아시아국가들의 우려를 우회하면서 군사활동의
길을 열어가는 셈이다.

일본은 경제를 통해 이미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켜 왔다.

일본의 경제적협력이 없으면 아시아경제전체가 휘청거릴만큼의 거대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국가들의 경우는 현지진출한 일본기업들이 없으면 나라전체가
유지되기 힘들 정도의 상태로까지 발전해 있다.

2차대전이전 일본군이 지배했던 지역들이 대부분 일본의 경제적 영향권안에
들어와 있다.

당시의 대동아공영권이 현재는 엔공영권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는 양상
이다.

일본의 자위대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군사력을 자랑한다.

국방비도 세계7위에 이른다.

자위대에 대한 일본국내의 견제기능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자위대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나마 견제역할을 해오던 사회당이
자민당과 손을 잡고 연립여당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자위대는 합헌이라고
선언해 버렸기 때문이다.

경제대국에서 정치군사대국까지 지향하는 일본의 움직임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동시에 전쟁책임을 완전히 청산하지도 않은채 다시 세계무대의 전면에
나서는 일본에 대한 아시아국가들의 우려 역시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 도쿄=이봉후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