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자본주의에 관한한 미국의 후배다.

이제 막 자본주의경제의 첫 걸음을 내디뎌 많은 부분을 미국으로부터
배우고 있다.

그러나 후배가 꼭 선배의 장점만을 닮지는 않듯이 현재 러시아에서는
과거에 미국이 겪었던 많은 부작용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있는 러시아의 신흥재벌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지난 19세기말을 풍미하던 소위 노상강도귀족(robber barons)
이라 불리던 미국의 신흥 자본계급과 비슷한 방법으로 부를 움켜쥐고
있다.

기존산업이 자본주의의 한 단위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발 빠르게
행동함으로써 자기가 세운 것이 아닌 기업을 자기소유로 만드는
것이다.

1세기전 존 록펠러,JP모건같은 미국 청년자본가들은 단돈 1달러의
자본으로 수백배 가치를 지닌 자산을 좌지우지할수 있던 당시환경을
이용해 큰 돈을 벌었다.

지금 러시아의 청년사업가들도 거의 무일푼으로 시작,거대한 구소련의
대기업 주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기회의 포착과 추진력,그리고 적절한 "빽"과 약간의
뻔뻔스러움이다.

재벌되는 방법은 이렇다.

지분이 국민사이에 공평하게 분배돼있던 기업이 갑자기 소유주가 필요한
시대를 맞았다.

이때 단 3%의 지분만이라도 확보할수 있는 자는 경영권을 가질수 있는
것이다.

관련법이 채 정비돼 있지않은 혼란기에서 이는 곧 기업의 소유주가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가격체계의 혼란을 이용,국가로부터 시장가치보다 낮은 "사회주의"
때의 가격으로 사서 막 태동하는 "자본주의"시장에 내다 팔아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방법도 있다.

유코스 루코일등 거대 석유및 원자재기업들은 이렇게 해서 이미
신흥재벌들 손에 들어가 있다.

인콤뱅크 메나텝등 민간은행의 청년주인들도 인플레율보다도 낮은
이율로 중앙은행에서 돈을 빌려 시장금리로 대출하는 식으로 단기간에
돈더미위에 올라앉았다.

물론 이런 일들은 영향력있는 정부관료와의 친분없이는 힘들다.

여느 혼란기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뇌물"과 "특혜"라는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최근에는 내재가치는 높지만 갓난 자본시장에서 아직 타당한
대우를 받고있지 못하는 기업을 찾아내 사고 파는 수법이 인기다.

이는 미국에서 지난 80년대 횡행했던 수법과 유사하다.

러시아의 신흥재벌들은 불과 5년만에 100년에 걸친 미국의 "돈
빨리벌기"수법들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청출어람"이 아닐수 없다.

< 염정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