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정벌했던 것과는 좀 다른가봐. 정벌이라면 가서 그 나라를
쳐부쉈다는 뜻인데, 조선국과는 전쟁은 안했다는거야"
"전쟁을 안하고,그럼 뭘 했는데요?"
"회담을 했대. 회담을..."
"무슨 회담을요?"
"몰라.내가 가봤나, 어떻게 알아"
"회담을 했는데, 정벌을 했다고 좋아들 하던데요"
"회담을 해서 이긴 모양이지 뭐"
"회담도 이기고 지고가 있나요?"
"있겠지 뭐"
"아하, 회담은 말로 하는 거니까, 우리 일본이 말로 조선국에게 이겼다
그거구나. 난 또 뭐라고. 헤헤헤..."
가고시마 변두리에 있는 어떤 조그마한 음식점이었다.
바깥에 나갔다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그 사이 손님들에게 들은 소식을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따스한 봄날 오후였다.
그렇게 중로의 부부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뚱뚱한 사나이가 개 한
마리를 끌고 들어섰다.
멀리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인 것 같았다.
"점심 되나요?"
"예, 뭘 드릴까요?"
"돈부리(덮밥) 두개 주시오"
"두그릇 말입니까?"
"그렇소"
아낙네는 그 남달리 뚱뚱한 손님을 힐끗 보고는 헤죽 웃으며 얼른 부엌으로
사라졌다.
몸집이 저렇게 절구통 같으니 두그릇을 먹어야 되겠지, 싶었던 것이다.
그 손님이 자리를 잡고 앉자, 남정네는 약간 놀라는 기색을 지었다.
그러나 긴가민가 싶은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후 아낙네가 돈부리 두 그릇을 들고 나와서 손님 탁자에 놓았다.
그러자 그 뚱뚱한 사나이는 그중 한그릇을 바로 자기 곁의 바닥에 도사리고
앉아있는 개 앞에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
개는 예사로 주인보다 제가 먼저 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돈부리를
날름날름 먹기 시작했다.
개와 함께 돈부리를 먹고 있는 그 손님을 두 부부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아낙네는 개에게 그릇채로 돈부리를 먹이다니, 별 희한한 일도
다 본다는 그런 표정을 지으며 슬금슬금 도로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남정네는 조심스레 그 손님 앞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약간 굽히며
물었다.
"저... 혹시 난슈(남주)도노가 아니신지요?"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