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지난 11월 수능시험이 있던 날,쌍둥이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예상보다
시험을 잘 치렀다는 자식의 말에 기뻐하며 설겆이를 하던중 오랜긴장이
풀려 쇼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의 잘못된 교육제도와 지나친 교육열이 한 가정을 비탄에 빠지게
하였지만 한편으론 그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사랑앞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다 그러하겠지만 그 쌍둥이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애들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을 다 쏟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자식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는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자기 인체의 장기마저도 기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에 부모를 심하게 학대하고 친척을 유괴살인하는가 하면 "지존파"
처럼 생각하기도 끔찍한 패륜아들이 버젓이 공존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이 생겨난 후로 노약자나 짐을 들고 탄 사람에 대한
무관심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메마른 세태.너무도 삭막하고 각박하다.

모두들 달팽이마냥 껍질속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자신과 가까운 주변
사람만 위한다면 소외계층은 이 사회를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손뼉도 같이 쳐야 소리가 커지는 법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정녕 어울려 사는 울타리이며 다음세대를
위하여 가꾸어 나가야 하는 공동의 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몫과 시간과 애정을 남에게 베출수
있어야 하겠다.

그중에서도 타인에 대한 사랑은 이 사회에 희망과 꿈을 주는 최상의
선물이 아닐까.

그러나 사랑은 말에 머물러있는 이상 무지개같은 아름다움이며 실체가
없는 환상이다.

사랑은 생활에서 몸을 이룬다.

사랑과 실천은 분리될수 없는 한 몸이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지난 세월을 탓하기 전에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해
보았으면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