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이 금지된 해역인지 아닌지를 우리 일본 군함이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 알수가 있어요. 이곳 강화도는 우리
도읍인 한양의 물질 들머리에 있는 섬이니 이 섬의 좁은 해협은 응당
통제된 곳이 아니겠소.

귀국의 경우를 미루어 짐작해봐도 능히 알수 있는 일 아니오. 그리고
귀국의 군함이 들어왔던 초지진의 포대 절벽에는 경고비까지 세워져
있단 말이오.

해문방수, 즉 해협을 굳게 지키고 있으니, 타국선신물과, 타국선은
지나갈수 없다 하고 분명히 경고문을 새겨 놓았단 말이외다"

"허허허." 구로다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내뱉듯이 말했다.

"비석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그게 배에서 잘 보이나요?"

"왜 안 보여요. 요즘은 만리경이라는 것이 있어서 먼데 것도 다잘
보이잖아요"

"허허허. 설령 그것이 보였다 하더라도 식수가 떨어졌으니 물을 구하러
갈 수밖에요. 일부러 금지된 해역을 침범했던게 아니라, 만부득이한
사정으로 들어가게 된 거지요.

말하자면 긴급 구조를 요청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데,포격을
가하다니 말이 되지가 않아요"

"어쨌든 그곳 포대의 수비병들은 정해진 수칙을 지켰을 뿐이오.
타국선신물과라고 되어 있으니,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타국선은
물리칠 수밖에 없지 않소. 그들에게는 하등의 잘못이 없어요"

신헌의 그말에 대하여 구로다는 얼른 뭐라고 받아넘기질 못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그러자 재빨리 부사인 이노우에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일본과 귀국은 근 삼백년 동안 수교를 하여 선린을 도모해온
터였어요. 귀국의 통신사가 우리 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왕정복고를 이룩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한 뒤로는
국서의 접수도 하지 않는 무례를 귀국은 팔년 동안이나 계속해 오고
있어요.

그일만으로도 우리가 분노를 참을 길이 없는데,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우리의 군함을 향해 포격까지 가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식수를 구하러
갔는데.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러자 구로다가 별안간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사과를 해야
하오. 사과를" 하고 내뱉었다.

정말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는 듯이.. 순간 회의장은 숨막히는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