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지멘스 닉스도르프 인포메이션(SNI)의 게하드 슐마이어사장은
국적없는 기업이 보편화되는 요즘시대에 보기드물게 "조국애"를
가진 기업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토로라 ABB등 세계 유수기업에서 혁신적인 경영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올초 지멘스 닉스도르프 인포메이션의 사장직을 수락했을때
주위에서는 극구 말렸다.

SNI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지멘스그룹의"미운 오리새끼"로 아무도
선뜻 조타수를 맡으려 하지 않는 기울어가는 기업이었다.

그를 아끼는 이들은 아무리 유능한 키잡이라해도 회사를 되살리기는
힘들다며 충고를 했다.

그를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 끌어오려던 존 웰치 GE회장은 "정신이
나간것 아닌가"라고까지 하며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다.

그러나 슐마이어사장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당시 ABB최고경영자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음에도 불구,SNI로
가기로 작정했다.

쓰러져가는 고국의 기업을 어떻게든 한번 회생시켜 보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SNI를 등대로 세워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는 독일 컴퓨터
업계의 나갈 길을 찾아 주겠다는 것이 그의 야심이었다.

이같은 슐마이어사장의 의지는 무모하게 비쳐질 뿐이었다.

유럽 최대컴퓨터기업중 하나인 SNI는 지난 4년간 계속 내리막길을 달려
그간 입은 손실만해도 13억달러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주력업종이던 대형컴퓨터를 생산하는데만 몰두,개인용 컴퓨터시대의
도래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지난달 정식으로 취임한 슐마이어사장은 30여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감회에 젖을 새도 없이 즉시 SNI의 모양새를 바꾸기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의 1차 목표는 관료주의에 찌들어 침체된 근무환경에 탄력을
불어넣는 것. 이를위한 첫 걸음으로 그는 파벌다툼에 휩싸여 있는
경영진에 과감히 메스를 댔다.

그동안 여러기업을 이끌면서 터득한 "젊은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라는
교훈을 염두에 두고 청년층을 대거 관리자로 기용했다.

아울러 연공서열제 폐지를 선언,능력에 따른 승진과 급여인상을
약속했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하기위해 의사결정과정에 토론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지금 그는 SNI를 소수정예기업으로 키워가기위한 준비에 몰두해있다.

"규모가 크다고 승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어느 기업이 더 빠르고 창조적이냐만이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그의
평소 경영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구상아래 슐마이어사장은 불필요한 사람들은 과감히 자르되
유망한 인재들은 적극 키워준다는 계획이다.

그는 특히 내년부터 SNI의 젊은이들이 리엔지니어링등 첨단 경영기법을
배워오도록 미국등지에서 현장실습을 시킬 작정이다.

이런 식으로 혈기왕성한 관리자를 3백여명가량 적극 육성한 후 기업
곳곳에 배치,"늘 변화하는" SNI를 만든다는게 그의 구상이다.

그러나 SNI만을 돌보기위해 그가 돌아온것은 아니다.

슐마이어사장의 궁극적인 귀향목적은 SNI를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독일 컴퓨터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 염정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