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대학, 무엇을 해야 하나 .. 유동길 <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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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길 < 숭실대 중기대학원장 >
성수대교 붕괴사고, 지존파라는 살인집단과 온보현이란 자의 살인행각등
각종 사건과 사고는 한국사회의 질서와 도덕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러자 대학에서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일반사회에서도 잘하는 일이라고 했다.
큰 사건과 사고나 나면 으레 흥분하고 개탄하면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서두르다가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그 사건과 사고는 잊고 만다.
도덕적 타락을 개탄하면서 근본대책을 마련한다고 할때 단골로 등장되는게
교육개혁이다.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달리할 사람은 없다.
대단히 불길한 예상이지만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사고와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부실 다리가 성수대교 뿐인가, 지하철은 어떻고 대량으로 지은 아파트는
어떤가.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난 후에도 현재 경부고속철도 공사가 부실하게 진행
되고 있다는건 충격을 뛰어넘는 일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
고려대는 "바른교육 큰사랑을 만들기 위한 교육선언"을 통해 도덕성회복에
나서겠다고 했다.
내년부터 신입생들에게 명심보감을 교양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유치원과 국민학교에서는 특수전문교육을 시키려 하고,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 잘치는 학생을 양성하고, 대학에서는 도덕성과 인간성회복을 위한
교육을 하고, 만일 대학원에서 예절교육이라도 한다면 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인가.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우수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될수 없다.
그러나 전문지식과 기술도 없이 마음씨 착한 사람들만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경쟁에 버릴수 없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도덕성회복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어느 특정대학 또는 모든
대학의 노력만으로 될 일도 아니다.
어릴때부터 각 가정에서 유치원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도덕실천을
생활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도덕교육이 학점 따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은 수많은 다리가 그동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비꼬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대학의 기적은 대학이 쓰러지지 않고 질적인 황폐화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팽창돼온 데에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대학의 진짜 위기는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은 고려할 틈도 없이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 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데에 있다.
지난번 교육부가 공개한 대학별 교육여건은 예상대로 거의 다 기준치에
미달했다.
현재 대학평가인정제가 실시되고 있다.
대학의 질적 수준을 체계적으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사회에 공표함으로써
그에 관한 사회적 인정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대학 스스로가 질적 향상을 외면해온 터라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의 긍정적 측면이 많은 건 사실이다.
각 대학이 좋은 평가를 받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평가하기 어려운 항목까지 평가대상에 넣으려다 보니 여기에도
어처구니 없는 무리가 생기고 있다.
대학간의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경쟁에 필요한 자율권이 대학에는
없다.
학생선발자율권이나 재정확보를 위한 자율권도 없이 질경쟁을 하라고
한다.
대학이 제모습을 갖추고 제역할을 하도록 하려면 정부의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
노력하지 않는 대학은 경쟁에서 낙오될수 밖에 없게 돼있다.
2000년대가 되자 마자 대학입학 지원자 수가 대학정원에도 미치지 못하게
돼 있다.
아직도 교육당국은 대학입학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는 것을 교육정상화로
착각하고 있고, 점수몇점 받으면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지원하라고 상담해
주는 곳이 있는 현실에서 대학이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대학이 떠맡아야 할 일은 무어니 해도 국제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까지 할것 없다.
용접을 제대로 하고 나사를 하나 하나 제대로 조이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동시에 다리설계를 제대로 할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착한 일 하는 자에게 하늘이 복을 내리고 나쁜일 하는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걸 대학에서 가르쳐서는 너무 늦다.
이 사회의 도덕성 회복은 나라 전체가 발벗고 나서야 하고 그런 가운데
대학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5일자).
성수대교 붕괴사고, 지존파라는 살인집단과 온보현이란 자의 살인행각등
각종 사건과 사고는 한국사회의 질서와 도덕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러자 대학에서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일반사회에서도 잘하는 일이라고 했다.
큰 사건과 사고나 나면 으레 흥분하고 개탄하면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서두르다가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그 사건과 사고는 잊고 만다.
도덕적 타락을 개탄하면서 근본대책을 마련한다고 할때 단골로 등장되는게
교육개혁이다.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달리할 사람은 없다.
대단히 불길한 예상이지만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사고와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부실 다리가 성수대교 뿐인가, 지하철은 어떻고 대량으로 지은 아파트는
어떤가.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난 후에도 현재 경부고속철도 공사가 부실하게 진행
되고 있다는건 충격을 뛰어넘는 일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
고려대는 "바른교육 큰사랑을 만들기 위한 교육선언"을 통해 도덕성회복에
나서겠다고 했다.
내년부터 신입생들에게 명심보감을 교양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유치원과 국민학교에서는 특수전문교육을 시키려 하고,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 잘치는 학생을 양성하고, 대학에서는 도덕성과 인간성회복을 위한
교육을 하고, 만일 대학원에서 예절교육이라도 한다면 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인가.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우수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될수 없다.
그러나 전문지식과 기술도 없이 마음씨 착한 사람들만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경쟁에 버릴수 없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도덕성회복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어느 특정대학 또는 모든
대학의 노력만으로 될 일도 아니다.
어릴때부터 각 가정에서 유치원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도덕실천을
생활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도덕교육이 학점 따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은 수많은 다리가 그동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비꼬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대학의 기적은 대학이 쓰러지지 않고 질적인 황폐화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팽창돼온 데에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대학의 진짜 위기는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은 고려할 틈도 없이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 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데에 있다.
지난번 교육부가 공개한 대학별 교육여건은 예상대로 거의 다 기준치에
미달했다.
현재 대학평가인정제가 실시되고 있다.
대학의 질적 수준을 체계적으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사회에 공표함으로써
그에 관한 사회적 인정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대학 스스로가 질적 향상을 외면해온 터라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의 긍정적 측면이 많은 건 사실이다.
각 대학이 좋은 평가를 받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평가하기 어려운 항목까지 평가대상에 넣으려다 보니 여기에도
어처구니 없는 무리가 생기고 있다.
대학간의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경쟁에 필요한 자율권이 대학에는
없다.
학생선발자율권이나 재정확보를 위한 자율권도 없이 질경쟁을 하라고
한다.
대학이 제모습을 갖추고 제역할을 하도록 하려면 정부의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
노력하지 않는 대학은 경쟁에서 낙오될수 밖에 없게 돼있다.
2000년대가 되자 마자 대학입학 지원자 수가 대학정원에도 미치지 못하게
돼 있다.
아직도 교육당국은 대학입학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는 것을 교육정상화로
착각하고 있고, 점수몇점 받으면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지원하라고 상담해
주는 곳이 있는 현실에서 대학이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대학이 떠맡아야 할 일은 무어니 해도 국제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까지 할것 없다.
용접을 제대로 하고 나사를 하나 하나 제대로 조이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동시에 다리설계를 제대로 할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착한 일 하는 자에게 하늘이 복을 내리고 나쁜일 하는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걸 대학에서 가르쳐서는 너무 늦다.
이 사회의 도덕성 회복은 나라 전체가 발벗고 나서야 하고 그런 가운데
대학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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