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일본군 육전대는 영종진을 비롯해서 구읍리 일대를 온통 부수고,
불질러 쑥밭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대포 36문과 화승총 1백30여정을 노획하여 운요마루로 옮겨 실었다.

조선군 수비병은 삼오명이 전사하고, 일육명이 포로가 되었다.

민간인들이 수없이 희생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일본군 육전대는 겨우 두 사람이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조선군 측의 참담한 패배였다.

비밀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이노우에는 만면에 흐믓한 웃음을 떠올리며,

"자, 이제 귀국이다. 나가키로!"

하고 명령을 내렸다.

전리품으로 무기와 포로까지 실은 운요마루는 마치 보물을 듬뿍 약탈한
해적선처럼 의기양양, 그러나 도망치듯 전속력으로 항진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부상자 가운데 하나는 스기다 소위였다.

도쓰케키를 외쳐대며 앞장서서 유달리 날뛰다가 화승총의 탄환에 다리를
다쳤던 것이다.

"스기다 그녀석 하필 제가 다칠 게 뭐야. 어지간히 설쳐댄 모양이지"

싱그레 웃으며 이노우에는 함장실을 나섰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스기다가 누워있는 방으로 간 이노우에는 대뜸,

"기분이 어떤가?"

하고 물었다.

"다리가 몹시 쑤십니다"

"다리야 물론 다쳤으니 쑤시겠지. 기분은 어떤가 말이야"

"예, 썩 좋습니다. 함장님"

질문의 뜻을 재빨리 알아차린 스기다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정말인가?"

"예, 정말입니다"

"몇 놈이나 해치웠나?"

"글쎄요. 확실한 건 모르겠습니다만, 너댓 놈은 해치웠을 겁니다. 직접
제손으로... 그리고 그리고 두 놈을 포로로 잡았고..."

"흠. 장하군. 그런데 어쩌다가 부상을 당했지?"

"총탄에 맞았지 뭐예요"

"다리를 다쳤으니망정이지 하마트면 큰일날 뻔했잖아. 그런데 말이야
스기다, 조선군의 사기는 어때? 형편 없던가?"

함정 이노우에는 상륙전에는 직접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스기다는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