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선택, 직업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성취업의 벽은 높기만 하다.

졸업이 가까워지면 취직하지 못한 여학생들은 초조해한다.

일찍 직장을 얻은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신이 무능하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취직만이 능사는 아니다.

근래 들어 취직대신 아예 자기사업을 시작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온갖 고생끝에 들어간 직장에서 자기만족을 얻지 못해 그만두고 독자적인
가게운영쪽을 택하는 여성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가하면 처음부터 자기사업을 목표로 하되 자금문제나 정보부족때문에
졸업후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관련분야에서 몇년간 경험을 쌓은뒤 뛰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직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인생이나 부의
축적에 있어 남보다 앞서가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고연호 우진무역상사사장(31)은 대학졸업(이화여대 경제학과)후 무역업을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사업에 뛰어든 맹렬여성.

고사장은 25세때인 88년 우진무역을 창사, 7년만에 연간매출액 10억원이
넘는 중소기업으로 키워냈다.

우진무역은 이름은 무역상사지만 실제로는 수공예품을 만드는 제조업체.

생산량의 90%는 일본, 나머지 10%는 미국에 수출한다.

"졸업후 취업할 생각을 안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운동권출신이라는
전력과 그다지 좋지 않은 학점때문에 취업이 어려워 아예 다른길을 모색하게
됐죠"

고사장은 86년 졸업후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신촌에 작은 학사주점을
차렸으나 이길은 아니다 싶어 1년이 못돼 그만뒀다.

"좀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학교때 국제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로 무역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한다.

특히 일본인들의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4달간 학원에 다녀 일본어를 배운후 오빠와 형부등 친지들에게 2천만원을
빌려 차린 회사가 우진무역.

고사장은 그런다음 "명함을 찍어가지고 무조건 일본으로 갔다"며 "짧은
일어와 영어를 동원해 도쿄와 오사카등지를 돌아다니며 바이어들과 만나고
시장조사를 다녔다"고 밝힌다.

결국 중소업체가 일본시장을 뚫기위해선 일본의 까다로운 공산품무역장벽을
피할수 있는 제품, 복잡한 유통구조를 뚫을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림액자 족자 병풍등 수공예품이었다고 한다.

마침 일본내 통신판매시장에 줄이 닿아있는 일본바이어를 만나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수 있었다.

고사장은 "첫해엔 빌려쓴 자본금 2천만원을 모두 까먹었지만 다음해부터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며 스스로를 구멍가게사장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일본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대표가 자문을 구하러올 정도로 그는
성공적으로 일본시장을 뚫은 무서운 여성으로 꼽힌다.

"올 매출액 목표는 15억원"이라는 고사장은 사업을 하려면 "출발할수 있는
과감한 결단력과 정확한 시장조사, 그리고 적극성과 신뢰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권성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