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표 < 딜로이트&루쉬 파트너 >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화의 기치를 내걸고 임직원 해외연수다, 출장이다,
리엔지니어링이다 하며 장래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습과 타성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지속적인 국제화는 대학교육에 의해서 다음 세대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국제화 바람이 기업보다는 오히려 대학가에서 크나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버드 스탠퍼드등 유수한 대학에서 학부학생들에게 해외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해외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한두 학기를 외국에서 강의를 듣거나
과제물을 풀기 위해 외국에 나가는 기회를 갖는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하버드대학생
51%가 참여했고 칼라마주대학생 85%가 참여했다.

대학생활중 가장 보람있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스탠퍼드
졸업생 87%가 해외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이 있다고 대답했다.

전미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이제는 거의 모든 대학이 어떤 형태로든
해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 프로그램은 이제 급속도로 낡은 이야기로 전락하고
있다.

더욱 알맹이 있는 국제화 교육을 위해 각대학이 경쟁처럼 새로운 커리큘럼
을 개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시간대학 경영대에서는 학부학생들에게 일본의 회계원칙과
일본상법규정을 가르치고 있다.

뉴저지주에 있는 자그마한 사립대인 라마포대학에서는 매학기마다 60번씩
이나 글로벌 텔레컨퍼런스를 벌이고 있다.

이는 전화나 비디오를 통해 학생들이 세계 여러나라의 학생 교수, 그리고
행정당국자들과 직접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 한학기의 수업일수가 대개 20여주일인 것을 생각하면 매주
세번씩이나 이런 컨퍼런스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대학의 총장은 "앞으로 대학졸업생들은 다른 나라 사람과 마주 앉아
비즈니스를 논하고 상담을 벌이게 되는 일이 많을 것으므로 이처럼
텔레컨퍼런스를 통해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뉴욕대학은 숫제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가 "글로벌리즘"이라고 공표
하였다.

경제의 국제화에 따라 기업은 외국어 외국문화 외국제도에 익숙한 졸업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대학은 졸업생들을 그렇게 준비시킬 책임이 있다는 것이
이 대학 당국자의 말이다.

그래서 캠퍼스에 외국학생 교수 학자들이 득실거려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대의 워싱턴광장 캠퍼스에서는 이미 30여개국의 교수와 학생들이
북적대고 있다.

그런가하면 외국에 분교를 내는 대학도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는 이미 32개국에 분교가 있고 일본에만도 20개가 넘는 미국
대학들이 분교를 설치하고 있다.

해외분교의 설치에는 큰 대학교뿐만 아니라 작은 대학까지도 나서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의 웹스터대는 제네바 런던 빈에 분교를 세웠고 보스턴에
있는 자그마한 에머슨대는 마스트릭트에 분교를 세웠다.

여기저기 세울 형편이 안되므로 유럽단일화조약이 체결된 화란의
마스트릭트에 분교를 세워 학생들의 국제화 교육에 힘쓰겠다는 이야기이다.

이들 분교에서는 미국대학생뿐만 아니라 현지의 학생들도 모집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대학생의 해외유학도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해 국제교육회에 의해 정식으로 밝혀진 유학생 수는 7만2,000명이다.

물론 이는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 43만8,000명에 비하면
약소한 수치이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우선 과거에 미국대학생이 외국유학을 한다고 하면 흔히 돈많은 집의 딸이
디자인이나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파리에 가는것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오늘의 유학생은 대부분 남학생이고 전공과목도 비즈니스나 산업학이며
유학대상국도 유럽 일변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미국학생들은 대부분 영국 프랑스 스페인등지로 유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최근들어 러시아 일본 그리고 중국이 새로운 유학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유학생이 늘어나는 이유로는 물론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인들의
국제감각 향상, 기업의 국제화에 따른 고용기회 증대가 크지만 미의회의
시기적절한 입법활동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장학금이나 기타 지급금은 미국내 대학에 재학하는 학생에게만
허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학의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는 대학당국자들의 로비에 의해
미의회는 92년에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였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외국에 유학중인 미국 대학생들에게도 연방정부의
모든 장학금과 지급금이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각계에서도 국제화바람이 일고 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이 바뀌어 국제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할수는 없다.

국제화는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일이다.

이처럼 시간걸리는 일에 내일의 주역이 될 대학생을 참여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학도 미국대학의 국제화운동에서 한두가지 참고하고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