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은행원" "현역 최장수 시중은행장" "고졸출신의 입지전적
인물" "보기드문 호남출신 은행장"

지난4일 물러난 윤순정 한일은행장에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많았다.

전남강진출신으로 목포상고를 졸업한 지난 51년 은행생활을 시작한이후
44년째 외곬인생을 걷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런 그도 퇴임은 아름답지 못했다.

팩시밀리 한통으로 4년6개월의 은행장생활과 44년의 은행원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물론 그가 내세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는 "퇴임의 변"은
그럴듯 했다. 그런데도 금융계는 선뜻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투서가 발단이 돼 사정당국의 내사가 시작되는 걸 알고 미리
사임했다"느니,"대출부조리가 발각됐다"느니,"표적사정의 신호탄이다"는
등의 추측들이 무성하다. "다음은 XXX행장차례"라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본인의 "용퇴주장"보다는 "외압설"이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답은 한가지. 과거의 경험칙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이라는 것은 중도퇴진한 은행장들의 사례다.

새정부들어 임기도중 물러난 은행장은 모두 11명. 임기를 채우고
"명예제대"를 한 사람은 아예 한 사람도 없다.

과거에도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그만둔 은행장을 제외하면 물러난
사람은 전부 "본의 아니게"였다.

정권교체기의 사정바람에 휩쓸렸거나 대형금융사고의 책임을 졌거나
둘중의 하나다.

"사상최대의 금융계인사" 지난80년8월23일자 신문들은 이런 타이틀로
전날 주총소식을 전하고 있다.

12개은행에서 8개은행장을 비롯 79명의 임원얼굴이 바뀌었다.

이같은 대규모 인사의 배경은 숙정.퍼렇던 신군부의 서슬은 "선풍기
바람에 날려 대상자를 고를 정도"로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4명의 은행장이 한꺼번에 옷을 벗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에도 은행장은 분위기쇄신의 대상이 됐다.

김준협서울신탁은행장을 시작으로 이병선보람은행장 박기진제일은행장
안영모동화은행장이 줄줄이 물러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평소 뒷말이 많았다는 점.뒷말의 근거는 물론 내부인사
의 투서였다.

라이벌인사의 조직적 음해에 의해,아니면 평소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에
의해 이들의 과거는 속속들이 까발려 졌다.

윤순정행장도 그랬다고 한다. 정권교체기의 사정대상으로 은행장은
안성맞춤이다. 맘만 먹으면 물증을 찾기도 쉽다. 금융의 공공적 성격상
분위기전환용으로도 그만이다.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다.

정치인들처럼 바람을 막아줄 변변한 방패막이 하나 없는 은행장들은
하루아침에 "비리의 대명사"로 전락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83년 아웅산사건이후 "괘씸죄"에 걸렸다는 안영모한일은행장이나
90년 5.8조치의 의지과시용이었다는 이병선한일은행장도 예외는
아니다.

대형금융사고가 터졌을 경우 은행장이 책임을 지는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사고로 물러나는 은행장들은 찍소리도 못한다.

세인의 주목을 끈 사고관련 퇴임행장의 계보는 이렇다.

지난 79년 율산파동때의 홍윤섭서울신탁은행장등 3명 <>82년 임재수조흥.
공덕종상업은행장(이철희.장영자사건) <>83년 주인기상업은행장(명성사건)
<>83년 이헌승조흥은행장(영동개발사건) <>87년 구기환서울신탁은행장
(범양사건) <>92년 이상철국민은행장(정보사땅사기사건) <>92년 김추규
상업은행장 (명동지점장자살사건) <>94년 김영석서울신탁.선우윤
동화은행장(장영자사건) <>94년 허 준외환은행장(한국통신입찰가
조작사건)등.

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에 파장을 짙게 드리웠던 사건들에 책임을 졌다.

민심의 안정을 꾀하거나 정부의 서릿발같은 의지를 과시하려면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감도 없지는 않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괘씸죄"까지 첨가되면 구속까지 이른다. 정작
법원에선 무죄로 판결이 날것도 말이다.

이러다보니 지난20여년동안 5대시중은행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2년2개월에
불과하다. 한일은행은 임기(3년)의 반인 1년7개월밖에 안된다.

80년이후 8명의 은행장중 임기를 채운 사람은 이석주 박명규행장 두명
밖에 없다.

"허탈하다. 살아있다고 살아있는게 아니다"

지난 4일 윤순정한일은행장의 사퇴소식을 접한 한 시중은행장은 이렇게
말했다. 칼날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은행장이다. 그런데도 이자리에 오르기 위해 투서와
모략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은행장자리가 가지는 마력이
세기는 센 모양이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