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 < 연극연출가/서울교육극단 대표 >

여고시절에는 혼자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원하는 것이 많았다.

많은 소원들을 꿈인듯 생시인듯 머리속에 그려보느라 아예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때 연극연출을 평생의 일로 결정, 대학에서 전공
하기로 결심하고나니 그 많고 많던 소원은 일시에 단한가지로 응축됐다.

그뒤 20년이 훨씬 넘도록 연극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소원은 두가지 소원으로 불어났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학시절 기성극단에서 첫연출을 했는가 하면 평생 하겠다던 연극연출을
못하고 2년간 방송연출을 했다.

여건상 원하던 전통연희의 현대화를 시도할수 없어 절망도 했고 세계연극을
접하겠다고 전세금을 뽑아 뉴욕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5년간의 뉴욕생활을 거쳐 돌아온뒤 지금까지 고정관념과 싸우며 교육연극을
하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연극속에서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으며 걸러진것들은 지금
두가지 소원으로 남아있다.

한가지는 연극이고 다른 한가지는 교육연극이다.

개인적인 연출작업에서야 연극과 교육연극을 굳이 나눌 필요가 없겠지만
같은시대를 살고있는 이웃과 함께 "우리"라는 개념으로 미래를 생각하면
연극과 교육연극이 나뉘어 정리된다.

"연극"에서 하고 싶은 일은 "현대화된 우리의 전통연희"를 한국의 특성과
주체를 살려 설립한 "고유의 한국형무대"위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이 소망은 옛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우리전통연희가 서양의 무대위에서
공연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지면서 갖게됐다.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문예회관 예술의전당등 큰 공연장은 모두 서양무대
유형을 따라 건설된 것들이다.

넓은 땅과 공사비 시설비등을 생각하면 생전에 한국형무대위에 전통연희를
계승한 연극을 올릴 날이 오지 않을 것같지만 머리속에는 공연장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고 거기에서 공연할 작품을 몇년전에 써놓기도 했다.

연극인들이 우리조상들의 얼이 담긴 민속과 전통을 이어가는 정신과
자세로 우리연극의 뿌리찾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연극작업에 반영
시킨다면 혹시나 첫번째 소원을 이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한국연극은 자연히 우리만의 고유한 향기를 발휘하며 연극이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더욱 커질 것이다.

또 세계무대에 나가서도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두번째 소원은 연극방법론을 교육현장에 활용하여 후세들의 인성교육을
돕는 것이다.

이는 교사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학생중심의 창조적 교육으로 전환하는데
기여할수 있는 방법으로 오늘의 우리나라 실정에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교육연극"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연극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기능과 가치를 인정받아 초.중.고 교과과정에 연극이 음악 미술처럼
한과목으로 떳떳하게 자리잡는 것이다.

기성세대를 위한 일반연극이 아닌, 성장기의 아동 청소년을 위한 교육연극
이 교과과정에 채택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이룰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만3년전부터 교육연극보급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차례 교육연극워크숍을 개최하고 교육연극공연을 하는 동안 많은 현직
교사들과 뜻있는 학부모들의 높은 관심도를 확인할수 있었다.

또 실제로 교육대상이었던 국교3학년에서 대학생 성인에 이르기까지 좋은
반응과 긍정적평가를 얻었다.

이를 통해 관계기관의 제도적인 뒷받침만 있다면 교육연극이 체계적이고
거국적으로 보급될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결국 청소년기에 가졌던 "평생연극을 하겠다"던 막연한 한가지 소원은
거창하게도 "한국의 교육"과 "한국의 연극"까지 생각하는 두가지 소원이
되었다.

그런가하면 나이가 들면서 혼자 할수 없는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줄 아는 융통성도 생겼다.

"부디 나의 두가지 소원이 1백년후에라도 꼭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소서".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