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안정기금은 밀림의 사자인가.

강세로 출발한 주식시장이 증안기금의 시장개입설만 들려도 움츠러드는
반응을 보이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잠시 주춤했던 종합주가지수가 최근 1,100포인트를 넘어 다시 상승세를
타자 증안기금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유주식을 내놓기 시작했다.

추석직전의 9월과 10월초, 그리고 11월초를 거쳐 두달새 세번째 시장개입
이다.

그때마다 지수상승세는 뚜렷하게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일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개장과 함께 7포인트를 넘어 뛰던 지수가 증안기금이 겨우 1백억원어치의
물량을 팔았을 뿐인데 오름세가 꺾이고 오후장에는 전날보다 떨어진 선에서
폐장됐다.

중가대형주의 개별종목장을 업고 상한가를 치기도 하면서 연일 오름세를
보이던 금성사주식이 증안기금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밀리고 있는 것도 한
예다.

금성사주식은 2일 내림세를 보였다.

증안기금관계자는 보유주매각상황을 개별종목별로 밝힐수 없다면서 금성사
주식의 매각사실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시장관계자들은 대부분 증안기금이 금성사주가와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증안기금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활황장세덕택에 증안기금의 위력이 종전에 비해 상당히 약화됐기 때문이다.

또 증안기금이 무차별적으로 장세억제에 나섰던 과거와는 달리 선별적으로
보유물량을 내다파는등 시장개입전략을 바꾼 탓도 있다.

이와 관련, 증안기금관계자는 "단기급등한 종목에 한해 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시장에 들어갔다가도 장세가 둔화되면 빠지는 움직임을 되풀이하고
있다.

시장개입목적이 추석전에는 물가에 미치는 심리적인 파급효과를 우려해
증시의 지수 1,000포인트 돌파를 억제하는데 있었지만 지금은 보유주식의
적당한 이익실현과 시장의 물량부족을 채우는데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단기급등에 따른 초과수요를 메우는 일이 주식시장안정이라는 기금
본래의 목적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증안기금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1년반앞으로 다가온 해체와 무관하지 않다.

증안기금의 공식적인 해체일은 96년5월4일.

89년말이후 계속된 주가폭락사태와 관련, 주식매입을 통해 주가를 부추길
목적으로 90년에 출범한지 꼭 6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증안기금은 증권업협회가 중심이 돼 결성한 주식보유조합으로
정관의 규정과 상관없이 출자한 증권사등이 총의로 결의할때는 언제든지
해체가 가능하다.

때문에 최근 증안기금의 조기해체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와관련, 증안기금관계자는 물론 사실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으로
지목받고 있는 재무부관계자들은 조기해체설을 일축하고 있다.

박재윤재무부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증안기금의 해체는 자율에
맡기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준상증안기금위원장도 "해체는 예정대로 진행될것"이라면서 해체후의
일정은 아는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안기금이 주식을 팔든 사든 주식시장에 개입할수 있는 시기는
주가지수선물시장이 출범하는 96년이전, 즉 95년말까지 밖에 여유가 없다.

시장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물시장에 증안기금이 돌출요인으로
개입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내년에 2차 외국인주식투자한도가 확대되면 국내증시참여가 활발해질
외국인투자자들이 증안기금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증안기금의 작동을 단축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시장개입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증안기금은 해체에 대비,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있는 틈을 타 보유물량털기에 나서고 있다.

작년말과 연초에 한차례 주식을 내다 판 이후 증안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8월말현재로 취득가기준 3조8천억원규모다.

싯가로 5조원을 상회하는 보유주식중에서 9월이후 약4천억원어치를 판
것으로 추산된다.

증안기금이 팔고 있는 주식은 유동성이 큰 단기급등종목들이다.

여기서 40~50%의 수익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위원장은 "출자한 회원사들에 대해 기회비용, 즉 출자금에 대한 최소한의
이윤은 남겨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증안기금은 현장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은행 증권주들은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증안기금관계자는 "아직 충분한 수익이 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금융주를 떠안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시장여건상 증안기금의 물량털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위원장은 "내년에는 금융주도 상승세를 타지 않겠느냐"고 보유금융주들을
매각할수 있기를 희망하면서도 "일본증안기금의 경우도 보유주식을 처분
하는데 7~10년이 소요됐고 그래도 남은 현물은 은행들이 떠맡았다"고 설명,
무리해서 매각에 매달리지는 않을 뜻을 밝혔다.

그렇다 해도 증안기금은 보유주식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움직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이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