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성수대교의 붕괴사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지만 이는 따지고
보면 있을수 있는 사고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와 비슷한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수 있다는 말이다.

하늘과 땅,바다에서 대형사고가 터진게 지난해였다.

다리붕괴사고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해 창선대교의 붕괴,건설중이던 팔당대교와 신행주대교의 붕괴사고는
전국의 강과 바다에 놓여 있는 다리중 어느것 하나 믿을게 없다는 불안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위험요소는 다리뿐이 아니다.

버스 배 지하철 기차 비행기 타기가 겁나고 ,아파트가 무너질까 겁나고,
길거리에 나가면 또 이런저런 일이 겁난다.

국민들이 하루하루를 목숨걸고 살아가야할 형편이다.

과연 이러고서도 우리는 선진국으로 진입할수 있는가.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는 계속되는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였는가의 기록이다.

경제발전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국내외환경에 대응을 잘한 나라는 변영을 누렸다.

대응을 잘 하려면 제도를 정비하고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그러한 제도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어느시대 어느나라에서든 사건과 사고는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원시적인 사고다.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는 한국에서 가장 원시적이고 후진국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대형사고는 단순한 국내 사건일수가 없다.

산업현장이나 거리에서의 폭력시위장면, 지존파의 살인공장, 다리가 내려
앉은 모습이 세계각국의 신문방송으로 보도되고 TV로 생생하게 세계각국의
안방까지 비쳐지고 있다.

이런 경우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이 어떻게 보일까.

지구촌시대의 세계 각국은 하나의 경제권이다.

경쟁력을 잃는 나라는 설 땅이 없어진다.

경쟁력은 비단 상품의 경쟁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낮게 평가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선진국을 따라 잡겠다는 것은 치밀한 준비와 작전계획도 없이,
또한 열심히 뛰려는 마음과 성실성도 없이 무턱대고 게임에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운동선수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대형사고가 한번 터지면 그동안 애써 쌓아가던 국가
이미지와 대외적 신인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다시 쌓아올릴 때쯤 되면 또 사고가 터져 또 무너진다.

한국 건설업체의 해외진출은 그동안 눈부신바 있었고 평가또한 좋았다.

그러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고는 한국건설업체가 쌓아올린 업적을
하루아침에 평가절하시키고 그 결과 한국업체의 해외수주는 불이익을
받게될게 뻔하다.

불이익을 당하는건 해외 건설부문만은 아니다.

외국 바이어들은 같은 품질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한국제품보다 경쟁국제품
을 선호할 가능성은 커진다.

외국의 재보험기관들은 재보험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할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관광을 취소하는 사례도 있다는 소식이다.

다리도 마음대로 건널수 없는 나라라는 평판을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이다.

사건이 날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관계자 문책,
원인분석, 대책수립등 소리만 요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망각에 빠지고, 비슷한 일이 또 터지고, 또 비슷한
소리만 반복되어 왔다.

이제는 개탄만 하고 관계자를 문책해서 자리를 바꾸고 하는 일로는 문제를
바로 잡을수 없다.

예컨대 외국에 나가서는 다리공사뿐 아니라 모든 토목.건설공사를 잘
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제대로 안되는 것은 우리 사회내부에 구조적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회사, 특정인사, 특정부처의 공무원에게만 책임이 있는게 아니다.

총체적 부정부패의 연결고리에 어느 한 고리가 불거져 나온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할때다.

한국에는 설계대로 짓는 건축물이 없고, 공사장은 범죄현장이라고 어느
재일교포 건설회사 회장은 진단하고 있다.

설계 따로 건설 따로는 현실과 동떨어진,법따로 실제 행동따로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 새로 시작해야할 일은 간단하고 분명
하다.

"지킬수 있는" 법과, 제도와, 규칙을 만들어 놓고 이를 어길때에는 그
책임을 철저히 묻는 일이다.

우리가 그런 기초부터 새로 다져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말하고 국가이미지를 이야기할수 있을 것이다.

거짓이 통하고 이리저리 돈을 빼먹는게 일반화되어 있는데도 기술을 탓하고
사고가 날때마다 엄벌로 다스린다는건 해당자만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게
할뿐 문제의 근본치유책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