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흰 것이 예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지금은
가무잡잡한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 정말 웃기는 화장품이 있다면, 실내에서 몸에 골고루 바르고난
얼마뒤면 마치 햇볕에 태운것처럼 예쁘게 몸을 태워주는 화장품이다.
지나친 일광욕이나 이렇게 일부러 태우는 것은 피부암의 원인이 될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언젠가 텔레비전 뉴스시간에 얼굴이 가무잡잡해야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없는 강박관념이라던 아나운서의 재미있는 말이 떠오른다.
쌍꺼풀이 있어야만 미인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서구에서 주목하는 동양의 모델은 쌍꺼풀이 없고 눈이 크지 않은,
무속적이라 할만큼 동양적인 얼굴이다.
구두는 어떤가.
앞굽과 뒷굽이 너무 차이가 나는 뾰족구두가 건강에 나쁘다고 한창
떠들더니, 요즘엔 10년전 우리가 목욕탕 갈때나 끌고다니던 앞굽과 뒷굽이
거의 같은 슬리퍼 타입의 구두가 유행이다.
책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은 소위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논픽션류가 대유행이다.
"나는 이런 일을 저질렀다"에 나오는 그 일이 크면 클수록 그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높다.
음악이나 미술에도 분명 유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화가가 아닌 사람이
그린 그림이 잘 팔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글을 쓴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요즘 시대는 모든 사람이
작가인 시대이다.
일기나 가계부를 빠짐없이 쓰는 보통사람이 그것을 출판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닐때, 어쨌든 그때부터 그는 작가가 될수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보란듯이 써 제낀다.
그래서 비밀 따위는 점점 골동품이 되어간다.
굉장한 비밀일수록 고가의 상품 가치를 지니고 날개돋친듯 팔려나갈
것이다.
쓰는자와 읽는자가 "상처"와 "비밀"이라는 지점에서 서로 만나, 서로의
속을 터놓고 울고 웃는 독서- 그런데 왜 사람과 사람간의 의사소통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걸까.
감성과 사고와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되어 가고 그결과 이제 세사람이상의
동의하에 그사람 좋은 사람이라든지 그영화 좋더라든지 그책이 그럴듯하다는
말을 듣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이다.
누군가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작가인 시대가 멀지 않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책을 쓰는 세상은 어쩌면 정말 "귀머거리와 몰이해의
시대", 진실로 외로운 세상일지 모른다.
모두가 잊혀지기 싫어서, 누구에겐가 자신의 속을 털어놓고 싶어서, 아니
이 허무한 삶의 한자락을 세상에 남겨놓고 싶어서 글을 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 말들의 쓰레기로 가득찬 난지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공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나자신 글을 쓰면서 이 헛된 글귀들이 "공해"에 또 한몫하는 것은 아닐까
늘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소망을 갖고 있다.
꽝꽝 울려대는 세상의 소음속에서 외로운 두 귀머거리의 의사소통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마치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언어법인 "수화"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많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으로 들리는 그런 말법을 터득하고 싶은 것이다.
어쩔수없이 우리는 모든 사람이 책을 쓰는 것이 유행인 세상에 던져져
있다.
그런데도 왠지 더욱더 외로워지는 세상, 문득 밀란 쿤데라의 이런 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책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식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자기 아내에게 이야기
하면 귀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