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면서 남북경협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북경협은 특히 통일논의의 전단계가 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정부도 2년째 중단돼온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재개할 모양이다.

92년 경제기획원 차관 재임시절 남북 경제공동위원회 한국측 의장으로
평양에 다녀온 한갑수 산업경제연구원회장을 만났다.

한회장은 지금 연구원을 운영하랴, 대학출강하랴, ''민''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한회장은 경찰서장을 지냈는가 하면 농림수산부관리에서부터 환경처/
경제기획원차관, 그리고 국회의원(10대)까지 지내는 등 ''민/관/정을 섭렵''
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협상이 타결됐습니다. 북.미간 합의내용을
어떻게 보십니까.

<> 한회장 =핵문제는 세계의 정치역학구도에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현안
입니다. 북한의 핵이라고 해서 한반도의 파워스트럭처에만 영향을 끼치는
그런 국지적 이슈는 애초부터 아니었다고 봅니다.

NPT(핵확산금지조약)는 탈냉전이후 미국이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힘의
원천중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미국은 내년4월로 끝나는 NPT체제의 연장과 중간선거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한국정부가 소외된 협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북의 핵활동을 동결하고
경수로를 한국형으로 지원키로 한 것은 큰 성과가 아닐수 없습니다.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도 한껏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문제가
해결됐다고 남북경협에 곧장 뛰어들어서도 안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습니다.

<> 한회장 =협상결과를 받아들이는 이상 남북경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빠를수록 좋다는 건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시혜적인 차원인가요,
아니면 요소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경제에 북한과의 협력이 상호보완적인
효과를 가져올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까.

<> 한회장 =시장경제의 메리트를 북한에 알린다는 점에서입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주민에서부터 지도층까지 반성하도록 유도하는게 중요합니다.

상호보완적 효과라든가 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접근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북한 지도층이 체제반성을 한다고 흡수통일이 가능할까요.

<> 한회장 =기본적으로 흡수통일이란 용어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흡수통일을 할수가 있습니까. 결과적으로 흡수통일이
된다면 모를까.

먼저 이북주민들이 시장경제의 메리트를 1백% 몸으로 깨닫고 실제생활이
나아지도록 하는게 통일을 향한 첩경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흡수통일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듭니다.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계실때 남북 경제공동위 의장을 맡지 않았습니까.
92년인가요, 평양도 두차례 방문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한회장 =그때 받은 인상은 경제가 완전휴면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제가 성장률 마이너스 4~5%의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는게 통계자료지만
실제상황은 "그 이상이구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개성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의 창문밖으로 보이는 건 벌거벗은 민둥산
뿐이었습니다.

연료가 부족해 나무를 닥치는대로 베어버려 그렇다더군요. 이북경제가
아무리 자족경제라지만 사람사는 곳엔 물류가 있을 법도 한데 영 그렇지가
않습디다.

평양까지 가는 동안 눈에 띈 트럭이나 승용차는 모두 합해봐야 10여대나
됐을까.

-남포에도 가셨지요. 그곳은 어땠나요. 북한정부가 자랑하는 공업지역
이라는데.

<> 한회장 =평양과 남포는 서울과 인천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경인지역이 경공업지역이라면 평양과 남포일대는 중공업지대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두 지역에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지요. 한마디로 남포지역은 껍데기
만 공장지대일뿐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라는게 정확한 표현일겁니다.

남포제철소만 유일하게 연기를 내뿜고 있었을 뿐 그외의 공장은 거의 휴업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같은 북한산업의 실상이 우리기업들의 대북진출에 오히려 호재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요.

<> 한회장 =그렇게 생각하는 기업이 꽤 많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북경협
의 물꼬가 터지면 기업들이 너도나도 마구잡이식으로 북으로 몰려가는
부작용도 예상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합니다. 이미 남북간에
합의해 놓은 남북경제공동위원회로 창구를 단일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합니다.

-그러나 규제일변도로 나가서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기업들의
대북진출은 궁극적으로는 통일뒤 남한경제가 북한에 지급해야할 산업재건
비용을 미리 분담한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북한경제를 일정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한회장 =동서독의 경우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됩니다. 한 체제가
무너지면 그 체제가 유지하고 있던 생산능력도 함께 무너지더라는 점이지요.

독일이 통일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구동독의 생산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점에서 찾아야 합니다.

남북 통일에 앞서 북한의 경제수준을 높여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만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점 때문에 통일은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일고 있는
것이겠지요. "통일비용론" "통일부담론"이 유행하더니 "통일경계론"으로
발전하고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라면 현실이지요.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분명 문제는 있습니다. 통일이 가져올 비용을 계산하기 이전에 남북분단
비용도 따져봐야지요. 예컨대 민족의 정열과 에너지가 얼마나 낭비되고
왜곡 좌절됐는지도 깊이 생각해봐야 되는것 아닙니까. "분단비용론"
말입니다.

<> 한회장 =동서독이 통일기회를 잡았을 당시의 서독경제는 막강했습니다.
대외자산이 5천5백억마르크였으니까 미국돈으로 치면 3천7백억달러나 됐죠.

그런 독일이 왜 그토록 엄청난 통일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찬찬히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 순채무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국제수지도
적자기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년쯤 당장 통일이 된다고 합시다.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같이 빠져 죽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통일이 닥쳐올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 한회장 =갑작스런 통일은 재정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기금등을 조성할
필요가 있지요.

장기적으로는 산업배치나 통일됐을 때 남쪽으로 내려 올 북한주민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남북경협에 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만 대북경협을 제대로해 나가려면
문제는 국가경쟁력 아닙니까.

<> 한회장 =그렇습니다. 우리경제가 튼튼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게 급선무
라는 생각입니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하지만 과연 국민경제의 경쟁력이 높아져서 경기가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짚어봐야죠.

제 생각으로는 외생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외생적인 요인이야 언제든 사라질수 있는만큼 우리내부의 경쟁력강화 조치를
꾸준히 밀고나가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

"21세기 비전"같은 것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비전이 제시되고 있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 한회장 =한마디로 관료집단이 보수성을 버리는 일이 시급합니다.
관료들이 공부를 안하고 안일과 자기만족에 안주하는게 문제입니다.

후기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산업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30년전 개발연대를 이끌어 나가던 행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부의 자원배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회장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 달린 문제입니다. 인력과 기술개발이
중요합니다.

이 분야에 대한 정부노력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입니다. 농어촌특별세를
신설해서 농어촌에 57조원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인력과 기술
개발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감이 크지요.

-대학에 출강하시면서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셨을텐데요.

<> 한회장 =고향인 광주에 있는 동신대학에서 지난 학기부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제도는 사실 기획원 차관시절 내가 만든 거지요.

앞으로는 고급관료출신들 뿐만아니라 기업인 언론인 출신들도 후학들에게
자신의 경륜을 들려줄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무척 건강해 보이시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 한회장 =쉬지않고 몸을 부리고 있는 것 외엔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을 살겠다는 생활신조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새벽4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대중목욕탕에 들러 집으로 들어오면
6시30분가량 됩니다.

준비하는 시간도 있으니 대략 2시간 정도 뛰는 거지요. 남보다 한시간
정도는 시간을 버는 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여년 이렇게 하고 있지만 잠자리엔 항상 자명종시계를 머리맡에 놓고
있지요.

역시 인간은 기계가 아닌가 봅니다.

< 대담 : 유화선 경제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