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상 < 동아시아경제연구원장/전 한은총장 >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려앉는 어처구니 없는 참변이 발생했다.

대형열차사고 목포비행기추락사고 서해 페리호침몰사건등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더니 인천의 도세사건, 오림포스호텔 공무원매수사건등에 이미 경악한
국민들은 신문의 논조처럼 "무엇이 안무너지랴"하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같은 일들이 계속되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정부대책이 결과에 대한
일벌백계적 조치에 불과하고 그 근본적 원인에 대한 치유가 안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최고위관직을 지낸 모씨가 일본의 식당아가씨에게서
들었다는 감명깊은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무심코 아가씨에게 "이 식당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이냐"하고 물었더니
"정강현의 통상성주재관리의 식사대접을 할때가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정부관리들이 우리들 일본국민을 잘살게 만든 주역들이기
때문에 존경심에서 그렇다"고 했다.

당시 모씨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며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금할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정부관리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수있게 해야 한다.

정부관리의 역할이 이와같이 막중함은 선진국이나 후진국 할것없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본공무원은 식당종업원으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 공무원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도세니 뇌물이니
복지부동이니 하는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공무원은 청빈하고 사명감이 있어서 부패하지 않고 국가관리를
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공무원은 탐욕스럽고 청빈하지 못하고 사명감이
없어서 그렇다고 할수 있을까.

흔히 교육이 잘못되고 의식구조를 고쳐야 하느니 하는 막연한 처방들만
내놓다가 사건만 터지면 일벌백계로 엄벌에 처하는 정도이다.

물론 일벌백계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고질적인 공무원비리가 가셔지리라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공무원의 봉급수준이 낮아서 하급공무원들은 흔히 말하는 제사
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가 사회비리 척결차원에서 취한 사정한파로 젯밥이 없어지니
이번에는 아예 제사조차 지내려고 하지 않는 "복지부동"이 등장하게 됐다.

일본 공무원과 우리나라 공무원은 그 자질의 우수성에 차이가 없다.

국가경제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모든 면에서 엘리트라는 점도 같다.

그러나 우리 공무원들은 사생활을 유지해야할 봉급이 일본 공무원보다
터무니 없이 낮다.

그러다보니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기 보다는 젯밥을 챙기지 않을수 없게돼
버렸다.

공무원 봉급체제에 그 근본원인이 있는 것이다.

몇년전에 아파트부실공사가 물의를 일으킬때 싱가포르의 정부관리가 대형
건물의 공사를 감독하는 장면을 TV에서 취재해 방영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건설중인 싱가포르 대형건물의 시멘트를 그때 그때 샘플을 떠서 보관했다가
3주후에 그 경도를 시험하고 철근을 깐후 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 관리는 점심시간에는 자기가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콜라와 함께 먹고
있었다.

건설회사의 뇌물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공무원이 부실공사를 감독하면서 규정대로 싱가포르공무원 흉내를 내다가는
쌀걱정 아이들 학비걱정은 물론 친척들로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남을 것이다.

같은 대학을 나온 동기동창은 회사에서 2배이상의 월급을 받고 좋은
아파트에서 승용차를 굴리며 아이들에게 과외공부까지 시켜 일류대학에
보내는데 자기는 국가관리를 맡은 엘리트 공무원이기때문에 청백리로
독야청청하고 있으란 말인가.

산업연구원원장시절 싱가포르 상공부차관이 방문한 적이 있는데 산업정책에
관한 논의끝에 슬쩍 싱가포르장관의 연봉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미화로 25만달러라는 대답에 참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 공무원의 연봉수준이 일반회사의 봉급수준보다 월등히 높다는
말을 듣고보면 고층건물감리관의 엄격한 공사관리는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지난60년께에 1인당소득이 8천달러수준이었고 일본은 70년께에
8천달러수준이었다.

우리나라도 1인당소득이 8천달러인데 미국이나 일본처럼 공무원의 연봉을
대기업수준 또는 그이상으로 책정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막강한 군대를 정부예산으로 유지하고 있다.

세무담당관리들이 도세를 일삼고 도박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도망을
다니다 체포되어 줄줄이 묶여가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들의 부인은 이웃사람과 얼굴을 맞대기조차 부끄럽고 그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조차 꺼리게 될것이다.

뇌물받은 것이 탄로가 나면 이와같은 파멸이 오는데도 공무원의 비리가
그칠줄 모르는 근본원인은 바로 공무원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공사감독을 싱가포르에서처럼 하고 각종 선박운항관리를
싱가포르처럼 하게되면 우리나라의 현재의 풀어진 나사를 다시 조일수
있게 될것이다.

공무원 봉급을 정부가 약속한대로 국영기업체 또는 대기업수준으로 현실화
하는 일대 결단을 이제는 내려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공무원봉급이 현실화될때 감독소홀로 인한 대형참사는 줄일수 있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