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소비시장은 제조업체가 아니라 유통업체가 주도권을 쥐게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체가 생산에서 판매까지 장악하는 전형적인 제조업체 지배형의
시장구조에서 벗어나 그 주도권이 유통업체로 넘어가는 변화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할인판매를 특징으로 하는 디스카운트스토어
창고형회원제클럽등 신업태의 도입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조업체의 권장소비자가격을 파괴하고 파는 곳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다른 일물다가의 유통혁명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이 국내 최초의 본격 디스카운트 스토어인 E마트를
개장한후 기대이상의 인기를 끌면서 국내 유통업계는 디스카운트스토어를
중심으로한 신업태에 너도나도 참여를 서두르고 있다.

신세계는 이와함께 이달초 양평동에 회원제 창고형클럽인 프라이스클럽
1호점을 오픈, 디스카운트스토어보다 더 싸게 판매하는 신업태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에따라 삼성물산 코오롱 선경등 유통업에 신규참여하려는 대기업뿐
아니라 롯데 현대 미도파 뉴코아등 기존 백화점업계까지 신업태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가격할인 신업태는 이미 미국에서는 60년대 디스카운트스토어인 월마트가
설립됐고 70년대말에 회원제 창고형이 생겨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이웃 일본과 함께 도입기를 맞고 있는데 일본이 백화점과
양판점이 성숙기를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섰지만 국내에서는 양판점이
도입단계에서 뻗어 나가지 못하고 백화점이 유통업계를 주도하면서 오는
2000년까지는 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그만큼 국내 유통업계의 발전단계에서 신업태는 중간단계를 생략한채
급속히 도입되는 단계를 맞고 있다고 볼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 신세계의 E마트에서 보듯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신업태 혁명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격 할인신업태가 국내 유통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우선 제조업체의
권장 소비자가격을 붕괴시켜 유통업태에 따라 같은 상품의 판매가격이
다른 일물다가시대를 연다는 것이다.

또 여기서 한발 더나아가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필요한 상품을 기획해
주문 제작하는 유통업체 주도형 소매시장 구조가 구축될 전망이다.

또 유통업체들은 시장개방과 함께 바이어들이 전세계를 다니며 싸고 질좋은
상품을 기획 주문생산해 판매하는 해외개발상품 시대가 멀지않은 시기에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대리점망으로 대표되는 국내 소비재 제조업체들의
유통지배를 무너뜨리는 단계에 이르는 소비시장체계의 변화를 몰고올 전망
이다.

이런 변화를 맞아 제조업체들은 자사 상품만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대리점망을 양판점형으로 바꾸거나 아예 유통업에 뛰어들어 유통혁명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우전자는 타사제품까지 취급하는 혼매형 양판점 사업을
시작했으며 삼성전자 역시 기존 대리점망을 양판점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또 이들그룹은 계열사에서 유통업 참여를 서두르고 있으며 제일제당 미원
등 식품업체들 역시 식품을 중심으로한 하이퍼마켓 내지는 디스카운트스토어
사업을 추진중이다.

의류업체들의 패션전문백화점및 아웃렛 진출 역시 자사제품의 대리점망
운영방식의 유통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할인 신업태에 뛰어드는 업체들 역시 현단계에서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제조업체 주도형의 국내 소비시장 특성상 권장소비자가격을 파괴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점이다.

신세계의 E마트를 보면 국내 굴지의 생활용품 식품 업체들로부터 상품을
공급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해당 제조업체들은 기존 대리점들의
반발을 들어 거래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탁세제 비누 치약 조미료 참치 식용유 라면 카메라필름등은 상품
구색에서 인기브랜드가 적다는 점이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또 할인점들이 국내 대기업들의 상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외
수입상품을 취급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세계는 프라이스클럽의 경우 미국 프라이스클럽 본사로부터 상품을
들여와 전체상품의 약15% 가량을 수입품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E마트 역시
과자류 규격식품등은 수입품으로 채우고 있다.

따라서 후발 참여업체들 역시 제조업체의 시장 지배력을 허물수 없다면
계속 수입상품에 의존할수밖에 없고 상품수입도 원화절상흐름과 함께
가속화된다면 할인신업태가 수입상품 유통망으로 전락할 우려도 낳고 있다.

또 재래시장을 통한 무자료시장이 실명제 이후 위축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주류, 생활용품 화장품등의 가격은 이들 재래시장 가격이 더 싼 편이다.

박리다매 저코스트를 지향하는 할인점의 특성에 비추어 출점을 위한
부동산 비용이 너무 높아 채산성이 떨어지는 점도 과제이다.

규모의 효율을 높일수 있는 다점포망의 조기구축이 성공의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신세계의 경우 2000년까지 전국에 E마트 25개, 프라이스클럽 5개를 개장할
목표인데 E마트의 경우 현재와 같은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10개미만
으로는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유통업체들도 대형제조업체들의 반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망중소
기업의 상품을 발굴해 자체상표로 개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