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부분개각 발표가 있던 날 미국에서는
마이크 에스피 농무장관의 사임발표가 있었다. 이유는 수뢰혐의였다.

자신은 결백을 주장한다지만 중간선거를 앞둔 클린턴 대통령에게
가해질지 모를 정치적 부담등을 고려해서 사임을 결정한 것이라고
외신은 설명했다.

미행정부의 고위관리가 수뢰 혹은 독직혐의를 받아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님은 물론이고 이번에 과거와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간것은 우리 정부의 일부 요직인사와 같은날
전해진 때문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것은 그 내용이다.

사임발표에 담긴 배경과 내용에서 문득 느끼게 되는,뭔가 우리와 너무도
다른 점 바로 그것이다.

우선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 범법은 말할것 없고 윤리적 결함에도 냉혹
하리 만큼 단호한 미공직자 사회의 높은 도덕률에 부러움마저 금하기
어려워진다.

다음은 오는 12월31일자로 사임한다는 발표가 극히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는 여유이다.

4선의 하원의원에서 각료로 발탁된 에스피농무는 40을 갓 넘은 흑인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UR협상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여 농민들사이에
특히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말하자면 한국의 쌀시장개방을 관철시킨 장본인인 셈이다. 그런
그도 법앞에는 무력하다.

그는 농무부 감독을 받는 회사로부터 공짜 향응을 받은 혐의로 연방
특별검사와 백악관 법률고문실로부터 조사를 받아야 했다.

풋볼과 프로농구경기 입장권 같은 것을 합쳐 자신이 대접받은 향응을
총액 7,600달러(600여만원)로 계산해서 갚았다지만 윤리규정은 눈감아
주지 않는다.

수십억원대의 세금을 꿀꺽하고도 몇년동안 아무 탈없이 지내다 겨우
꼬리가 잡혔지만 어디 그것뿐이겠느냐고 넘겨버리는 우리사회 현실과
얼마나 대조되는 일인가.

아랫물 윗물을 통틀어 그정도의 뇌물이나 향응에 자리를 걸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물러는 나되 석달간의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결정은 또 어떤가.

혐의만으로 유죄는 아니고 집무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지 않는 여유,
후임을 고를 충분한 시간을 주는 여유를 우리사회도 언젠가 갖게
될수는 없을까 기대해 보게 된다.

국제회의에 가다말고 U턴해 와야 하는 등의 우리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고 매사에 조급함 그대로이다.

선진화 국제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되는게
아님을 절감하면서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