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는 더 대꾸를 하지않았다.

자기 생각과는 다르지만,에도는 비록 지금은 재야인이 되었어도
전참의이며 사법경이었으니 지체가 자기보다 월등히 높을뿐 아니라,
나이도 훨씬 위여서 자꾸 반론을 제기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에도는 눈에 가느다란 핏발이 서있었다.

그 핏발은 그의 심중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미 그는 무력봉기를 결정하고 그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터이니,늘
바짝 긴장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 눈으로 하야시를 쏘아보며 말했다.

"하야시 당신도 도사로 돌아가서 봉기를 서두르도록 해요.

해남의사도 우리 사가의 정한당 우국당과 마찬가지로 현정권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지 않소.우리가 먼저 불길을 올리면 틀림없이 사이고공도
움직일테니까요.

설령 사이고공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리노와 시노하라,그리고
벳푸가 가만히 있지 않아요.

부하들이 들고 일어나면 사이고공도 도리없이 일어선다 그거요. 알겠소?"

"에도 도노,죄송하지만 저는 오히려 에도 도노에게 신중을 기하시는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섣불리 봉기를 했다가는 큰 낭패를 봅니다. 좀 더 정세를 관망한
다음에."

"관망은 무슨 관망이란 말이오!"

에도는 벌컥 화를 내듯 내뱉었다.

하야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가고시마에 갔다 오더니 태도가 백팔십도 바뀌었잖소.기선에서는
곧 무력봉기를 할듯이 떠들어대더니..사내가 어찌 그 모양이오!"

"." "좋소.우리 사가에서 먼저 일어설테니 보오.틀림없이 가고시마에서도
움직일 거니까. 가고시마에서도 불길이 오르면 당신네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물론이죠.사이고 도노가 일어서면 우리 도사뿐 아니라,아마 전국의
불만 사족들이 다 뒤따를 겁니다. 그러면 성공할 수가 있죠"

"됐소.그러면 우리가 화약고에 불을 댕기는 역할을 하겠소"

이제 얘기가 끝났다는 듯이 에도는 자리에서 성큼 일어섰다.

그의 두눈의 핏발은 더욱 벌겋게 물들어 보였다.

에도는 곧 사가로 돌아갔고,하야시는 도사로 향했다.

하야시에게는 그렇게 큰소리를 쳤으나, 막상 사가에 돌아간 에도는
마음이 조금은 약해졌다고 할까,신중을 기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이고가 일어설것 같지 않다고 하니,아무래도 허리에서 힘이 빠지는
듯했고, 두눈의 핏발도 풀이 죽듯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에도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불길은 아래로부터
솟아올랐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