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인류가 학습에 의해 이루어놓은 정신적 물질적 일체의 성과를
일컫는 것이다.

자동차는 물질적 성과이고 문화는 정신적 성과라고 생각하는 탓에
자동차문화라는 조립낱말이 생성된 듯하다.

어쨌거나 한국엔 자동차문화가 성숙되지 않았다는게 중론이고 보면
한국을 자동차미개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면 자동차 생산자가 책임을 질 일이지만 자동차
운전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운전자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이는 곳에서는 질서를 유지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질서의식이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고속도로든 국도든 그리 쌩쌩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정속주행을 하면 틀림없이 저만치에 경찰이 보이게 마련이다.

얄미우리만큼 정속주행을 한다.

그러다가 그 지역을 벗어났다 싶으면 또 총알처럼 내달리곤 한다.

뺑소니 교통사고가 많은 것도 따지고 보면 누가 보았느냐 보지못했느냐
에 따른 비인간적 처사라고 생각된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걸 알면 뺑소니치지 않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싶으면 내빼고 따지는 이 윤리불감증은 우리 사회 전반의 죄목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동차 번호판에 숫자대신 차주인의 성명과 주민증번호가 적혀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아니 집전화번호와 사진까지 붙어있다고
연상해보자.

그래도 지금처럼 교통질서가 엉망진창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뺑소니 교통사고가 줄어들지는 않을것 같다. 어차피 사람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서의 행실이니까.

운전대를 잡으면 양반도 상놈된다는 말이 틀린말같지 않다. 연전에
5분먼저 가려다 50년 먼저간다는, 겁주는 안내판도 있었다.

그러나 그 구호가 가당찮다는걸 요즘 운전자들은 죄다 알고있다.

새치기하고 갓길로 내달리고 신호를 무시한 용감한 자동차가 분명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다는걸 알고있다.

그건 자동차문화 이전에 우리사회가 새치기와 뺑소니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문제이지 따로 떼어 생각할
사안은 아니다.

항용 자동차문화를 따로 떼어 운전자의 도덕성과 인간적 호소로 해결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문화의 파행은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새치기 근성과 뺑소니
근성이 해소되지 않는한 절로 해결될수 없는 고질병이란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것이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 봐주는게 아니라 어찌하든 무시하는
행태도 기실은 기득권층의 위세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될 일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체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수 있다는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할때의 불편과 사람대접 못받는 것보다 교통체증
의 공동정범이 되는게 낫다는 이 오기를 풀수있는건 역시 우리사회가
사람대접을 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