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인삼에 관련된 설화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표적인 것이 1,500년전 충남 금산지방의 강처사 이야기다.

지금의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에 홀어머니를 봉양하는 강처사가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 그는 진약산 관음굴에 들어가
산신에게 기도를 했다.

그랬더니 산신이 현몽하여 "관음바위 절벽에 가면 빨간 열매가 달린
풀이 있다. 그 뿌리를 어머니께 달여 드려라"라고 말했다. 그대로
했더니 병이 나았다.

감동한 강처사는 그 씨앗을 성곡리 재안부락에 심어 재배했다.
2,000여년전부터 한국은 인삼의 주산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삼의 자생지가 고구려의 강역이었던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에 걸쳐
있는 것만 보아도 자명해진다.

문헌기록 또한 인삼의 주산지가 한국이었음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1,500년전 중국 양나라때 도홍경이 지은 의학서 "신농본초경집주"와
"명의별록"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인삼에 관한 첫 기록이 나온다.

그뒤에 쓰인 중국의 문헌들에서도 고구려와 백제의 인삼이 중국에
조공으로 바쳐졌고 인삼이 고구려와 백제에서 산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의 문헌으로는 "삼국사기"에 올라있는 인삼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성덕왕 소성왕 경문왕조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할 때 인삼을 보냈고
1,200년전인 소성왕때 경주지방에서 인삼을 재배했다고 되어있다.

"증보문헌비고"에도 천수백년전에 전남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일대가
재배인삼의 발상지이고 그것이 상인들에 의해 개성에 도입되어 인삼
재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시대를 내려와 고려말엽에는 인삼부족사태가 벌어져 본격적인 인삼재배
기술을 개발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야생인삼의 남획으로 전멸이 된 중국의 급격한 수요증가와 국내 왕실의
극심한 수탈에 대처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어쩔수 없이 개발하게 된 인삼재배기술은 천혜의 자연조건과 결부되어
오늘날과 같은 "인삼왕국"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그네의 최대 인삼산지인 길림성 무송현에 세계
최초의 인삼박물관을 개관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는 소식은 아무래도
주객이 뒤바뀐 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한다.

한국인삼의 성가가 이미 해외에서 널리 공인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 기선을 앗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전매당국의 대처가 있어야 될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