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여는 네덜란드] (3) 튤립의 영욕과 화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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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진부장 현지취재 ]]]
유럽의 정원 네덜란드.
꽃 수출로만 연간 5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라다.
작년 한햇동안 97억2천만 송이의 꽃을 세계 도처로 수출했다.
장미수출로만 무려 5억2천만달러를 벌어들였으며 국화(3억3천만달러)
카네이션(1억6천만달러) 튤립(1억5천만달러) 백합(1억3천만달러) 프리지아
(8천만달러)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수출량으로 보면 장미가 가장 큰 수익원인 것은 틀림없지만 네덜란드하면
역시 튤립을 연상하게 된다.
156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앤트워프로 배달된 터키원산의 튤립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를 소유해 보고 싶은
사람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갔다.
현대인들이 부동산이나 주식투기를 하듯 1630년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에
대한 투기가 열풍처럼 일어났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심지어 집을 팔아 튤립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다시 되팔면 큰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1636년 튤립을 거래하는 정규시장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 개설된 것을
필두로 로테르담 할렘 레이든 알크마 호른시에서도 열렸다.
튤립에 대한 투기적 광풍으로 "튤립미치광이"라는 뜻의 튤리포매니아
(Tulipomania)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투기의 종국이 항상 그렇듯이 튤립으로 형성된 거품이 꺼지기 시작
했다.
투기열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집과 재산을 날리고 알거지가 된 사람들의
무리가 즐비했다.
부러움의 대상이던 튤립이 저주의 대상으로 변모되었다.
투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몰락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튤립투기여파로 경제
공황으로까지 이어져 네덜란드 전체를 처참한 곤궁속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미국사람들이 1932년 겪어야 했던 공황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미 이
시기에 겪고 있었다.
그러나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개간해서 쓰는 네덜란드인들은 재난극복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튤립투기로 야기된 경제공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네덜란드를 튤립
왕국으로 변모시키는 기지를 발휘했다.
너도 나도 가지고 있던 튤립을 국가의 유형무형의 자산으로 변모시키는
대열에 나선 것이다.
매년 튤립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1억5천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튤립의 무형적 자산가치는 이루 말할수 없이 크다.
세계인들 속에 각인된 "아름다운 튤립의 나라"라는 이미지 자체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네덜란드 제1호 자산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을 겪는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 "피폐한 우리농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의제였다면 네덜란드의 화훼산업과 그 경쟁력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화훼산업을 농업정도로나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아름다운 꽃을 육종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공학등 최첨단의 지식과 시설이
필요하다.
개발된 품종을 농민들에게 보급 재배시키기전에 해야할 일은 소비자의
기호와 세계시장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다.
효율적인 꽃재배를 위해서는 온도 습도 광도등을 조절하기 위한 컴퓨터등
각종 첨단장비 시설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영양공급과 관련한 화학기술, 물관리등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꽃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들이 완벽하게 포장되어
적기에 소비자들에게 공급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꽃이 시들기 전에 소비자들에게 공급할수 있는 유통체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꽃 산업이야말로 첨단주의 첨단산업이며 종합예술이라는 지적이 여기서
비롯된다.
국제화훼거래의 80%이상이 네덜란드경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사실은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
유리온실전문업체인 CMO Holland 의 안톤 드 괴데사장은 "경매를 위해
미국에서 재배된 꽃이 암스테르담으로 공수되었다가 미국으로 다시 팔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네덜란드는 독일 영국 프랑스등 꽃을 사랑하는 부유한 꽃소비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환경이라면 우리도 일본이라는 좋은 꽃시장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를 모델 삼아 UR를 이겨 낼수 있으려면 우선 네덜란드 사람들의
적응방식을 잘 살펴보지 않을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7일자).
유럽의 정원 네덜란드.
꽃 수출로만 연간 5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나라다.
작년 한햇동안 97억2천만 송이의 꽃을 세계 도처로 수출했다.
장미수출로만 무려 5억2천만달러를 벌어들였으며 국화(3억3천만달러)
카네이션(1억6천만달러) 튤립(1억5천만달러) 백합(1억3천만달러) 프리지아
(8천만달러)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수출량으로 보면 장미가 가장 큰 수익원인 것은 틀림없지만 네덜란드하면
역시 튤립을 연상하게 된다.
156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앤트워프로 배달된 터키원산의 튤립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를 소유해 보고 싶은
사람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갔다.
현대인들이 부동산이나 주식투기를 하듯 1630년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에
대한 투기가 열풍처럼 일어났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심지어 집을 팔아 튤립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다시 되팔면 큰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1636년 튤립을 거래하는 정규시장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 개설된 것을
필두로 로테르담 할렘 레이든 알크마 호른시에서도 열렸다.
튤립에 대한 투기적 광풍으로 "튤립미치광이"라는 뜻의 튤리포매니아
(Tulipomania)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투기의 종국이 항상 그렇듯이 튤립으로 형성된 거품이 꺼지기 시작
했다.
투기열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집과 재산을 날리고 알거지가 된 사람들의
무리가 즐비했다.
부러움의 대상이던 튤립이 저주의 대상으로 변모되었다.
투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몰락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튤립투기여파로 경제
공황으로까지 이어져 네덜란드 전체를 처참한 곤궁속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미국사람들이 1932년 겪어야 했던 공황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미 이
시기에 겪고 있었다.
그러나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개간해서 쓰는 네덜란드인들은 재난극복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튤립투기로 야기된 경제공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네덜란드를 튤립
왕국으로 변모시키는 기지를 발휘했다.
너도 나도 가지고 있던 튤립을 국가의 유형무형의 자산으로 변모시키는
대열에 나선 것이다.
매년 튤립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1억5천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튤립의 무형적 자산가치는 이루 말할수 없이 크다.
세계인들 속에 각인된 "아름다운 튤립의 나라"라는 이미지 자체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네덜란드 제1호 자산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을 겪는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 "피폐한 우리농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의제였다면 네덜란드의 화훼산업과 그 경쟁력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화훼산업을 농업정도로나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아름다운 꽃을 육종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공학등 최첨단의 지식과 시설이
필요하다.
개발된 품종을 농민들에게 보급 재배시키기전에 해야할 일은 소비자의
기호와 세계시장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다.
효율적인 꽃재배를 위해서는 온도 습도 광도등을 조절하기 위한 컴퓨터등
각종 첨단장비 시설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영양공급과 관련한 화학기술, 물관리등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꽃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들이 완벽하게 포장되어
적기에 소비자들에게 공급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꽃이 시들기 전에 소비자들에게 공급할수 있는 유통체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꽃 산업이야말로 첨단주의 첨단산업이며 종합예술이라는 지적이 여기서
비롯된다.
국제화훼거래의 80%이상이 네덜란드경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사실은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
유리온실전문업체인 CMO Holland 의 안톤 드 괴데사장은 "경매를 위해
미국에서 재배된 꽃이 암스테르담으로 공수되었다가 미국으로 다시 팔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네덜란드는 독일 영국 프랑스등 꽃을 사랑하는 부유한 꽃소비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환경이라면 우리도 일본이라는 좋은 꽃시장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를 모델 삼아 UR를 이겨 낼수 있으려면 우선 네덜란드 사람들의
적응방식을 잘 살펴보지 않을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