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제2차세계대전 이후 지난 50여년간 세계경제는 역사상 전례없는 성장과
번영을 누려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성장과 번영을 뒷받침한 건전한 국제경제질서는 냉전
체제하에서 미국의 주도로 형성.유지되어 왔다고 볼수 있다.

이와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전후 상당기간 미국은 건전한 국제
경제 질서의 형성.유지에 필요한 비용과 부담을 감내할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여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세계경제가
필요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데는 자국국익에 부합하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했다.

실제 제1차세계대전이후 미국은 19세기의 영국에 이어 가장 강력한 산업
국가로서 경제적여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수적인 고립주의적
노선을 유지했다.

그결과 세계경제는 리더십부재에 따르는 보호무역주의의 심화와 국제통화
제도의 파탄, 그리고 세계적 대공황을 경험했었다.

물론 미국도 이러한 세계적 대공황의 예외가 될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이 제2차세계대전이후 미국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자세로 건전한
국제경제질서를 창출.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또한 전후 미국의 방대한 군사.산업 생산력을 가동할수 있는 시장확보를
위해서도 세계경제의 번영에 도움이될 국제경제질서가 필요하다고 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더하여 냉전체제하에서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트루먼 독트린"의 존재도 미국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게한
또다른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후 세계경제가 필요로 하는 자유
무역의 증진, 안정된 국제통화제도의 유지등과 같은 소위 공공재의 제공과
전후 세계경제의 복구를 위한 리더십을 행사하게된 것이다.

제2차대전이 미처 끝나기전인 44년7월에 이미 "브레튼 우즈회의"를 주도
하여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창설하였고 곧이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출범시키게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럽과 일본경제의 전후부흥을 위해 대대적인 원조계획인
"마셜계획"(marshall plan)과 "단지계획"(Dodge plan)을 수립하여 이들
나라의 경제부흥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 미국이 바람직스런 국제경제질서 확립에 도움이 될수 있는 방향
으로 수혜국들이 정책을 수립하도록 원조계획에 조건을 부과한 것도 빼놓을
수없는 사실이다.

그결과 소위 브레튼 우즈 체제 자체가 유지될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은 월남전의 여파와 에너지 가격상승등
여러가지 복합요인에 의해 인플레이션이 가속되고 국제수지적자가 누적되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에 71년 닉슨대통령은 브레튼 우즈체제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파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이후 세계주요국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경제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시작
했다.

이것은 바로 세계경제가 필요로하는 리더십 발휘에 필요한 미국의 경제적
여력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최근에 와서는 냉전체제의 붕괴로 이러한 리더십발휘를 위한 강한
인센티브 마저 소멸되어 버렸다.

오늘날 세계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미국이 남겨놓은 리더십공백을 메울수
있는 단일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번영에 필요한 새로운 국제질서는 주요 경제
강대국들의 "집단리더십"(collective leadership)에 의해 형성.유지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바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불안정성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경제는 빠른 속도로 지구촌화(globalization)내지 깊은
통합(deep integration)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국제경제정책의 구분
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이에따라 종래에는 고유한 국내정책분야라고 여겨지던 환경 근로조건
인권문제 기술정책 경쟁정책 정부구매등에 관한 새로운 국제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곧 출범하게될 세계무역기구(WTO)가 바로 이러한 분야의 국제규범을 만들고
나아가 국가간 분쟁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한 변동환율제에 수반될 여러가지 불확실성을 줄여주기 위한 "신축적인
환율안정대"제도를 도입해야된다는 주장 역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단일지도력의 부재로 우루과이라운드(UR)다자간협상이 7년
이상 걸려 겨우 종결된점에 비추어볼때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때 국제경제질서는 앞으로 상당기간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또한 세계시장에서의 기업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뿐 아니라 국가간
경제적 마찰과 분쟁이 잦아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국제여건속에서 대외의존도가 남달리 높은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우선 WTO등 다자주의 체제의 유지.발전을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경쟁력배양을 위한 각분야별 능률향상 노력도 배가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일수록 쌍무주의보다 다자주의가 유리할뿐
아니라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강한 국가경쟁력의 기반위에서만 창출될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