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중에 고베에서 내릴 손님들이 갑판 위로 나와 서있었는데, 순사는
하선 중지라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손님들은 수근거렸다.

하야시와 에비하라도 고베항에서 가고 시마로 가는 배에 갈아타려고
트렁크를 들고 손님들 속에 섞여 서있었다.

하야시는 가고시마로 귀향한 사이고의 심복인 기리노와 시노하라를
만나 앞으로의 대책을 협의하려고 에비하다를 따라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부호인 에비하라는 말하자면 안내 역할을 하는 셈인데,비를 하면서
여행삼아 그런 일을 자청하고 있는 터였다.

그 두 사람돠 작별을 하게 된 에도는 배웅을 하려고 그들 곁에
서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순사 두 사람이 배에 올라와 하선을 중지시키니,
혹시 금족령이 내려져 있는 자기를 붙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슬그머니 긴장이 되었다.

에도뿐 아니라, 하야시와 에비하라도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그들 역시 반정부적인 용무로 여행을 하고있는 터이니,순사가 나타나자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는 격으로 절로 불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두 순사는 승객들을 한사람 한사람 검문하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하야시와 에비하라의 차례가 되었다.

에도는 여전히 그 곁에 서있었다.

하야시는 굳어졌던 표정을 확 풀고 엷은 웃음까지 떠올리며 유들유들한
어조로 자기 앞에 다가선 순사에게 말했다.

"수고하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검문을 하는 거요?"

"범인을 잡을려고요" 순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요?"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이,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오?" 순사는 째려보듯이
물었다.

"나는 하야시유소라고 하는데,외무성의 대승이었소"

"아, 그렇습니까"

순사의 말씨가 대번에 달라지자,하야시는 그러면 그렇지, 한낱 순사
따위가 싶으며 얼른, "이분이 누구신지 아오? 참의였고, 사법경이셨던
에도신페이 도노요" 하고 말했다.

"아이구" 순사는 놀라는 기색이었다.

사법경 에도신페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기네 경찰을 직접 관장했던
대감이 아닌가.

지금은 경찰이 내무성 산하가 됐지만 말이다.

순사는 차려 자세를 취하고 에도에게거수경례를 붙였다.

그러자 하야시가, "나하고 애기 좀 해요" 하며 순사를 데리고 갑판
한쪽으로 갔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