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관료] (48) 제4편 빛과 그늘 (13)..내무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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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B군의 군수 Q씨는 지금도 몇해전 일을 생각하면 "아찔했다"는
기억 뿐이다.
내무부의 지방채계장으로 있던 당시 차관으로부터 "지자제선결요인인
지방재정확충을 위한 실무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던
것.
차관의 지시는 "지방재정난 타개를 위한 방안으로 지방채발행을 활용할 수
있으니 관련자료를 준비하라"는 것으로 이어졌다.
"채권의 자도 모르는채" 지방채계장을 맡고있던 Q씨는 크게 두가지 점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차관지시를 너무 형편없이 수행해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 해도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내무부에서 크려면 경제전문가로 "낙인"이 찍혀서는 안된다.
지방채계장직이야 어차피 거쳐가는 자리 아닌가.
적당히 때우고 군수도 하고 도지사도 해봐야 할 내가 지방재정문제에 너무
"튀어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고민이었다.
결국 그는 금융기관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고충"을 토로하고 "적당한"
대책을 마련해 지방채계장을 무난하게 "졸업"했다.
그러고는 그의 "설계"대로 이듬해 서기관으로 승진해 지금의 군수자리에
앉아 있다.
K도의 경제국장 Z씨도 요즘 마음은 "뽕밭"에 가 있다.
"물좋은 지역"의 군수로 영전하는 일 말이다.
"산업경제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시골지역 부군수로 있다가 얼마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그에게 주어져 있는 일은 갈수록 기울어가는 지역산업의
활성화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업무파악이 안돼 있고, 파악할 생각도 별로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나와 9급행정서기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이래 산업과 경제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이 나이에 새롭게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란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지방경제관료-. 지자제 전면실시를 앞두고 지역재정과 산업의 자립이
부쩍 강조되고 있는 요즘일 수록 당연히 지방행정의 "중심"으로 부각돼야
할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내무관료" "지방행정관료"는 있어도 "지방경제관료"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지방경제관료는 "없다"고 해야 정답이 될 게다.
우선 지방관료들의 인사관리 시스템이 그렇게 돼있다.
지방공무원을 채용할 때 경제분야의 전문공무원을 따로 뽑지 않는다.
6급이하의 하위직만, 그것도 송두리째 일반행정직으로 선발해서는 경제
관련부서에 "스쳐지나가듯" 자리를 맡긴다.
그나마도 한 자리에 1년이상 앉아있는 법도 거의 없다.
얼마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팀이 지방의 경제관련 부서 공무원들의
실태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현재의 과에 근무한지 6개월이 안됐다"는 설문의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가까이 됐다는 것.
사정이 이렇고 보면 지방경제관련 부서의 관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상 부딪치는게 중앙경제부처 관료들과의 정책협조문제다.
"지방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애로와 자금사정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산업진흥시책을 제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면 한참뒤에 엉뚱한 자료를
보내온다. 공문의 문구조차 제대로 해석못하는게 틀림없다"(상공자원부
C과장).
그렇다고 지방관료들에게 "장기"가 없는 건 아니다.
"상급기관으로 가는 보고서 하나는 밤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끝내주게
작성할 수 있다. 한자넣고 철자법 따지는데는 자신이 있다"(서울 S구청
K계장)는 얘기다.
당연한 일이다.
"보고 경험하지도 못한" 기술개발이나 기업운영을 지원하는 일이 가슴에
와닿을리 없고, 그저 책상에 앉아서 몇해전 전임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또 보며 베끼는 일로 소일을 하니 보고서작성엔 "인"이 박힐 수 밖에.
장기는 또 있다.
공업입지등을 규제하는 각종 법령에 대한 "암기실력"이다.
지역기업을 지원하는 "조장행정"은 엄두를 내기 힘들지만 입지 세제 환경
등에 관한 각종 규제를 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법대로"만 외치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3월 상공자원부가 내놓은 "경제행정규제 현황"에 따르면 재무부와
더불어 각 지자체의 규제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었다.
처리하는 업무가 규제위주로 돼있으니 지방경제관련 부서에 몸담은지
한달정도만 지나면 관련법령을 애써 외우려들지 않아도 달달 외우게 된다는
것.
최근 서울시의 한 구청에서 세금징수를 맡는 9급여직원이 무려 8억여원을
횡령했던 것도 이런 규제위주 지방경제행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이런 지방관료들의 "원시적인" 경제행정행태를
그저 한탄이나 할만큼 한가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내년이면 시.도단위의 지자체장이 직선에 의해 선출되는등 전면적인
"지방자율경영시대"가 열리게 돼있다.
지방의 자율적인 경제행정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지방관료의 경제마인드
무장"이 시급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역관료전체가 세일즈맨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미국 콜로라도주나 일본
이즈모시의 경우를 예로 들 것도 없이, 우리 지방행정체계에도 경제분야에
대한 일대 인식전환이 절실해졌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중앙부처에 집중돼 있는 인재의 편중현상을 시정해
재경 행정등 분야별로 5급(사무관)지방행정고시제도를 신설하는등 제도개선
도 뒤따라야 한다(이달곤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등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5일자).
기억 뿐이다.
내무부의 지방채계장으로 있던 당시 차관으로부터 "지자제선결요인인
지방재정확충을 위한 실무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던
것.
차관의 지시는 "지방재정난 타개를 위한 방안으로 지방채발행을 활용할 수
있으니 관련자료를 준비하라"는 것으로 이어졌다.
"채권의 자도 모르는채" 지방채계장을 맡고있던 Q씨는 크게 두가지 점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차관지시를 너무 형편없이 수행해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 해도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내무부에서 크려면 경제전문가로 "낙인"이 찍혀서는 안된다.
지방채계장직이야 어차피 거쳐가는 자리 아닌가.
적당히 때우고 군수도 하고 도지사도 해봐야 할 내가 지방재정문제에 너무
"튀어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고민이었다.
결국 그는 금융기관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고충"을 토로하고 "적당한"
대책을 마련해 지방채계장을 무난하게 "졸업"했다.
그러고는 그의 "설계"대로 이듬해 서기관으로 승진해 지금의 군수자리에
앉아 있다.
K도의 경제국장 Z씨도 요즘 마음은 "뽕밭"에 가 있다.
"물좋은 지역"의 군수로 영전하는 일 말이다.
"산업경제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시골지역 부군수로 있다가 얼마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그에게 주어져 있는 일은 갈수록 기울어가는 지역산업의
활성화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업무파악이 안돼 있고, 파악할 생각도 별로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나와 9급행정서기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이래 산업과 경제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이 나이에 새롭게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란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지방경제관료-. 지자제 전면실시를 앞두고 지역재정과 산업의 자립이
부쩍 강조되고 있는 요즘일 수록 당연히 지방행정의 "중심"으로 부각돼야
할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내무관료" "지방행정관료"는 있어도 "지방경제관료"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지방경제관료는 "없다"고 해야 정답이 될 게다.
우선 지방관료들의 인사관리 시스템이 그렇게 돼있다.
지방공무원을 채용할 때 경제분야의 전문공무원을 따로 뽑지 않는다.
6급이하의 하위직만, 그것도 송두리째 일반행정직으로 선발해서는 경제
관련부서에 "스쳐지나가듯" 자리를 맡긴다.
그나마도 한 자리에 1년이상 앉아있는 법도 거의 없다.
얼마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팀이 지방의 경제관련 부서 공무원들의
실태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현재의 과에 근무한지 6개월이 안됐다"는 설문의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가까이 됐다는 것.
사정이 이렇고 보면 지방경제관련 부서의 관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상 부딪치는게 중앙경제부처 관료들과의 정책협조문제다.
"지방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애로와 자금사정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산업진흥시책을 제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면 한참뒤에 엉뚱한 자료를
보내온다. 공문의 문구조차 제대로 해석못하는게 틀림없다"(상공자원부
C과장).
그렇다고 지방관료들에게 "장기"가 없는 건 아니다.
"상급기관으로 가는 보고서 하나는 밤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끝내주게
작성할 수 있다. 한자넣고 철자법 따지는데는 자신이 있다"(서울 S구청
K계장)는 얘기다.
당연한 일이다.
"보고 경험하지도 못한" 기술개발이나 기업운영을 지원하는 일이 가슴에
와닿을리 없고, 그저 책상에 앉아서 몇해전 전임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또 보며 베끼는 일로 소일을 하니 보고서작성엔 "인"이 박힐 수 밖에.
장기는 또 있다.
공업입지등을 규제하는 각종 법령에 대한 "암기실력"이다.
지역기업을 지원하는 "조장행정"은 엄두를 내기 힘들지만 입지 세제 환경
등에 관한 각종 규제를 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법대로"만 외치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3월 상공자원부가 내놓은 "경제행정규제 현황"에 따르면 재무부와
더불어 각 지자체의 규제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었다.
처리하는 업무가 규제위주로 돼있으니 지방경제관련 부서에 몸담은지
한달정도만 지나면 관련법령을 애써 외우려들지 않아도 달달 외우게 된다는
것.
최근 서울시의 한 구청에서 세금징수를 맡는 9급여직원이 무려 8억여원을
횡령했던 것도 이런 규제위주 지방경제행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이런 지방관료들의 "원시적인" 경제행정행태를
그저 한탄이나 할만큼 한가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내년이면 시.도단위의 지자체장이 직선에 의해 선출되는등 전면적인
"지방자율경영시대"가 열리게 돼있다.
지방의 자율적인 경제행정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지방관료의 경제마인드
무장"이 시급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역관료전체가 세일즈맨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미국 콜로라도주나 일본
이즈모시의 경우를 예로 들 것도 없이, 우리 지방행정체계에도 경제분야에
대한 일대 인식전환이 절실해졌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중앙부처에 집중돼 있는 인재의 편중현상을 시정해
재경 행정등 분야별로 5급(사무관)지방행정고시제도를 신설하는등 제도개선
도 뒤따라야 한다(이달곤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등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