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나라엔 중심이 없다.

마땅히 중심중의 중심이어야할 정당과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불신의
원천이다.

기업계의 힘은 급속히 커지고 있으나 권위와 정당성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관료가 겉으로는 불변의 중심같이 보이지만 능력 신뢰 권위 모두 낮고
일본같은 "공무계급"으로서의 역사적 권위도 없다.

해방후 세계적으로 그 어느나라보다도 맹렬하게 세를 늘린것은 이땅의
종교, 특히 기득교였다.

이들이 외형적 세력확장에 걸맞는 윤리적 정신적 실적을 올렸더라면
충분히 나라의 중심이 될수 있었다.

불행히도 크게 그리고 냉정히 보면 집단이기주의 추태를 부리는 기관중의
하나같은 길을 걷고 있다.

대학과 언론, 이들은 근대화과정의 특징으로해서 유일한지성의 권위세력
이었다.

그러나 가장 요긴한 대목,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판별해 주어야할 때마다
침묵 도피 회색 안주하거나 유행따라 장사하는 영리기관으로 전락됐다.

지성스스로 진실추구 진리탐구를 외면하고 부패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법조계도 같은 범주를 넘지 못한다.

열정과 도덕성의 우월로 급속히 세력화되던 반체제운동도 시대착오적
이념과 폭력남용으로 자진해 가고 있다.

아직 한가닥 남은 기대세력은 자발적 시민운동인데 이제 막 닻을 올린셈
이다.

기대를 걸고 적극 참여하여야겠다.

이와같이 중심세력의 결여 부재로 인하여 과거 군부가 "정권의 중심"으로서
최후의 결판을 내려가던 시절을 정상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민주정부도 "나라의 중심"은 있어야 된다는 점에서 그 중심을 세우지 못한
현정권의 정치력을 비판할수 있다.

그러나군부가 나라의 중심이었던 질서를 찬양하거나 민주정치에서의 가치의
다양성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역시 한나라의 중심은 각세력의 이해조정기관인 정치인 정당 의회 정부에
있어야 하고 이들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업 종교 지성(대학 언론) 노동계
의 지도자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이 성취의 권위와 도덕적 신뢰를 갖고 거리서 나오는 정당성 정통성의
힘을 발휘할때 한나라 한공동체의 중심이 바로선다.

어떻게 하면 상처투성이긴하나 현실적으로 중심이 되어야 할 세력과
지도자들이 신뢰와 권위를 새로 만들수 있을까.

오직 남은 하나의 길은 "기성"의 참회를 통한 거듭남이다.

우리나라엔 회고록이 없고 원노가 없다.

대부분 거짓의 기록이거나 때가 너무 끼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쓸만한 용기도,진실을 말하여 과거를 참회할 진심, 성실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최근 서양사학의 원로 노명식교수가 "대화"창간호에서 "군국주의와 한국
현대사"를 깊이 분석하고 "참회란 무엇인가-이글을 쓰게된 배경"이란
특별한 주석을 달고 있다.

그는 참회란 단순한 후회나 반성과 다르고 자신의 과오를 도덕적으로
뉘우쳐 새로운 인격의 인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며 인생과 역사, 세계와
우주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고 새가치관의 인간이 되는 것이라 했다.

또한 참회란 개인뿐 아니라 민족적 집단적 차원에서도 있어야 하고 현대사
에서 우리민족은 회한의 눈물, 비통의 눈물을 많이 흘렸으나 그것은 후회의
눈물이었을뿐 "정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정신적 도덕적으로 새가치관을
확립한 새민족으로 거듭났던가"하고 묻고 있다.

이땅의 기성정치와 각계지도자들은 반드시 참회해야 하고 그럼으로써만
상처투성이의 한시대를 청산하고 이땅을 배회하고 있는 사상 반체제 정통성
국제화와 민족문제를 극복할수 있다.

학생 노동자 젊은이들이 자기국가 우리공동체를 전면 부정하는 폭력의
극단으로 치닫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그 책임은 밖에도 있으나 안에서는 기성지도자들의 원인제공에 있다.

원인제공자들의 시대청산 참회를 통한 개혁없이는 전진하기 어렵다.

점쟁이같은 대운론들은 거두어 치우자.

만일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루마니아의 김일성인 차우셰스쿠가
인민의 이름으로 처형되고 소련제국이 무너지는 "밖의 변화"가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쯤은 서울 인천 부천 광주 부산 울산 창원 거제도 대구등 전국에서
좌우혈전이 벌어지거나 쿠데타의 불행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역사에 공짜는 없다.

기성지도층의 반성 참회를 통한 한 시대의 청산, 한 역사의 거듭남이
없이 남의 덕, 밖의 도움으로 행운은 오지 않는다.

남이나 북이나 같다.

공직자의 재산공개로 그쳐서는 안된다.

이땅의 지도자였거나 지도자들은 일정한 공준을 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참회의 마음가짐을 보여야 한다.

꼭 불법 범법재산이라는 뜻이 질풍과 노도시대의 부는 불법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업인에게도 사회환원을 요구하면서 하물며 공직지도자들이야 말할것이
없다.

인풀레나 자기수완을 핑계대지 말자.

한강의 기적의 대가라고 농담하지 말자.

큰 참회를 통한 큰 신뢰, 큰 수렴(수류)의 길을 거쳐야만 새중심을 세울수
있다.

인생을 마감함에 한마디 참회는 커녕 한줌 재산의 사회환원은 커녕
자기묘지관리비까지 국민세금에 떠넘기고자 기어코 국립묘지에 묻히겠다는
발가벗은 이기의 추한 모습의 지도자들로서는 이땅의 중심이 서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