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에서 기획일을 맡고있는 만큼 자연 배우들과의 만남이 빈번할수
밖에 없다.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은 이혜영이다.

몇년전 코리아나커피숍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엄지발가락에 붕대를 감고
약간 절뚝거리면서 나타났다.

지방촬영때 발가락을 다쳤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일상적인 여배우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화면속에서의 그녀는 늘 강하고 당당했기에 절뚝거리면서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처음부터가 뜻밖이었던 것이다.

"이혼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건 자동차키를 어디 뒀는지, 그런 걸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거였어요. 난 통 이런 일상적인 사물들을 잘 챙기지
못했거든요"

생각보다 무척 여리고 애교스러워서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연예인들과의 얘기란 기껏 장황한 질문을 던져도 요즘 근황이나 다음
출연작 정도를 대답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점을 감안해 볼때, 연기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피력할수 있다는 건 만나는 시간이 예정보다 훨씬 길어져도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만들어준다.

그 다음에도 그녀와 나는 얘기가 통하는 사이로 자주 만나게 되었다.

대중의 절대적인 우상으로서 팬들의 극악한(?) 성원을 입고 있는 최진실은
너무나 바쁜 스케줄 탓인지 늘 피곤하고 짜증스러워 보였다.

만날 때마다 그녀는 늘 촬영장 한쪽 구석에서 자고 있지 않으면 늘 피곤에
잔뜩 찌들어 있다.

어쩌다 화려하고 깔끔하게 치장한 날이더라도 잠깐 동안 만남의 시간을
가질라치면 금방 그녀의 표정은 샐쭉해지곤 했다.

1분이라도 여유로운 시간이 없는 그녀의 생활이 안타깝게 여겨지다가도
짜증이 날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점이 최진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부분의 연기자들은 아무리 피곤하고 짜증나더라도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자리에서 절대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별반 꾸밈이 없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비슷하다.

화면속과 화면밖이 똑같이 질투심 많고 "톡"쏘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래서 최진실은 인간적인 매력은 별반 느끼지 못하게 해도 연기자로선
가장 매력적인 "여우"임에 틀림 없다.

그런가하면 마냥 한결같은 배우가 있다.

바로 최고 인기 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안성기이다.

그를 만나기 전 그에 대해 나는 만나봐도 만나기 전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는 느낌을 가졌었다.

정말 그는 그랬다.

몇년동안 꾸준히 지켜본 그의 모습은 늘 변함없이 겸손하고 성실한 가장
이었다.

그런 모습을 강하게 간직한 나는 어떤때는 그의 치밀하고 계산적인 모습,
좀 모자란 듯한 박약아의 연기를 영화속에서 대하더라도 늘 그의 한결같은
인상만을 떠올리게 된다.

만나서 기분좋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배우 안성기는 연기자로서의 매력보다
인간적인 매력이 더욱 돋보이는 배우이다.

배우들을 지켜보면서 인생 무상을 느낄때가 많다.

최수지는 이전의 모습을 가장 자주 떠올리게 되는 연기자 중의 하나다.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던 당시의 그녀는 정말 깜찍하게 이쁘면서도 정확한
여자 연기자였다.

약속시간 잘 지키고 바쁜 와중에서도 깍듯한 매너를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가 인기 절정의 시기에 느닷없이 결혼을 하더니 또 갑자기
이혼하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다시 대하게 된 그녀의 얼굴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깜찍하던 이미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고뇌에 부은듯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다시 이전의 모습을 많이 되찾아가고 있지만 옛날의 그 인상이
아쉽게 기억되는 배우이다.

그래서 배우들이란 어쩌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배역의 이미지가 자신의 실제 모습의 척도가 되고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의
인생 또한 결국은 "가면의 인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