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심약한데가 있는 산조는 진짜 환자가 되어 병상에 누워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만사가 귀찮았다.

중도를 지키면서 온건하게 정치를 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병상에서 마침내 사표를 제출하고 말았다.

사이고를 비롯한 정한파 중신들이 문병겸 찾아와 사표 철회를 애원하다시피
했으나 이번에는 평소의 산조답지 않게 끝내 완강히 거절했다.

병이 드니 오히려 줏대가 빳빳해지는 모양이었다.

오쿠보는 얼씨구 잘됐다 하고 궁내성소보로 있는 동향의 후배이며 심복
이라고 할수 있는 요시이도모사네를 불러내어 산조가 정신병 증세로 사표를
제출했으니 신속히 수리하도록 메이지 천황에게 작용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곧 산조의 산표는 수리되었고 후임에 이와쿠라가 우선 서리로 임명되었다.

태정대신 서리가 된 이와쿠라는 옳지 이제 일이 제대로 되겠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산조를 제치고 자기가 천황에게 상주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쿠보 역시 회심의 미소를 흡족하게 지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놓을수는 없다고 막판 뒤집기가 차질없이 성공할수
있도록 권모술수의 화신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이와쿠라의 집을 다시 찾아가 마지막 계책에 대해 한번 더 얘기를 나누었고
요시이를 재차 불러내어 막판 뒤집기에 대핼 자세히 설명한 다음 메이지
천황이 자기네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사전에 또 작용을 하라고 당부했다.

산조가 그만두고 이와쿠라가 서리지만 태정대신 자리에 앉게 되자 사이고
진영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수뇌부 전원회의에서 결정이 된 터이니 상주를 안 할수 없을
것이고 상주를 하면 메이지 천황의 재가가 내릴 것은 기정사실이니,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사이고는 이와쿠라의 집무실을 찾아가 추위가 오기전에 조선국에 갔다올까
하니 결정된 안건을 조속히 상주하라고 독촉했다.

"염려 마오. 며칠 안으로 상주를 할까 하오"

이와쿠라는 담담한 어조를 대답하고는 입언저리에 살짝 의미있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사이고는 그 웃음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며칠뒤 이와쿠라는 메이지 천황을 알현했다.

그렇게 일부러 시일을 끈 것은 요시이가 메이지 천황에게 작용할 기회를
넉넉히 주기 위해서였다.

"필두참의인 사이고다카목리를 조선국에 전권대사로 파견하는 문제에
대하여 상주하고자 하옵니다"

이렇게 말하며 이와쿠라는 작성해 간문건을 메이지 천황에게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