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라고 하면 의례 서양전유품목쯤으로 생각되기 쉽다. 세계 향수시장을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의 제품들이 석권하고 있다보니 그럴수밖에 없다.

향수의 연원을 따져 보게 되면 그 생각은 잘못이다. 향수를 최초로
사용했던 나라는 파미르고원의 고대인도였다.

힌두교의식을 치룰 때 향나무를 피웠다. 몸을 깨끗이 한 뒤 향나무잎에서
짜낸 즙을 발랐다. 고대중국인들도 제사를 지낼때 분향을 하고 옷에
향수를 뿌렸다. 동방박사들도 어린 예수에게 향나무들인 유향과 몰약을
바쳤다.

한국의 고대인들도 향료를 향로에 사르거나 주머니에 담아 패용했는가
하면 향유를 몸에 뿌렸다.

고루려의 쌍영총 고분벽화에는 향로를 머리에 얹고 가는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라의 석굴암 내부의 둥근벽 둘레에 새겨진 불상들도
향로를 들고 있고 에밀레종에도 연꽃모양의 향로가 조각되어 있다.

신라의 김유신은 향불을 피워 하늘에 맹세한 뒤 무술연마를 했고 진지왕
은 도화녀와 7일간 방에 머무르면서 향을 살랐다.

신라인들은 남녀노소 빈부를 가릴 것 없이 향료 주머니를 패용했다. 또
한반도 곳곳에서 출토된 소형의 향유병 유적들에서도 한민족이 향유를 애
용했음을 엿볼게된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향원료를 수입해다가 가공한 향유를 역수출했을
정도로 그 제조기술과 감각이 뛰어났다. 조선새대에도 애향관습은 더욱
널리 성행했다.

이처럼 동양에서 발상된 향료는 고대의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거쳐
서양에 전파되어 귀족계급의 기호품이 되었다.

사해부근에서 발굴된 2000여전전의 향료공장의 재료가 90%나 중국과
한국등 동방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점을 미루어 보더라도 그것은 명백해
진다.

최초의 알콜향수도 1370년 헝가리왕비가 개발한 "헝가리워터"였다. 그뒤
프랑스에서는 1709년 오 드 콜로뉴, 1889년 기룰랭이라는 향수가 제조
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 인공향료가 만들어지면서 향수의 양산화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구한말 개항과 더불어 근대개념의 향수가 들어온 뒤 전통적인 애향관습
이나 뛰어났던 향료제조기술은 그 자취를 찾아 볼수 없게 되어 버렸다.
프랑스의 유명상표가 아니면 발을 붙일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때마침 제주의 감귤꽃과 유채꽃등의 향기를 담은 토착향수가 개발되어
시제품이 나왔다고 한다. 선조들이 발휘했던 기능과 감각이 세계에 널리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